벨베데레의 요새 시설은 16세기에서 뛰어난 것이었으며 피렌체의 부와 역량을 나타내는 것이었다.[1]
아르노강의 남쪽 구릉 지대이자 보볼리 정원에서 가장 높은 언덕에 위치해 있는데, 이 지점은 도시의 방어에서 가장 취약하다고 오랜 기간 여겨진 곳이었으며, 이러한 인식은 근대 초기에 대포가 발명되면서 더욱 강화되었다.[2] 군사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곳의 요새는 거의 도시 전체와 그 주변을 내려다 볼 수 있는, 매우 전략적 지점에 위치했다.[3] 르네상스 시기 전쟁의 성격으로 인하여, 요새들은 도시 방어 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었다.[1]
요새는 몇 가지 목적을 띠고 있었고 가장 중요한 것은 피렌체가 공격 받을 시에 정부 수반과 메디치 가문을 보호하는 것이었다.[4] 또한 피티궁과 올트라르노 구역, 도시의 남쪽을 보호하기 위해 설계되었다.[5] 이 외에도, 완공 후 100년 넘게 군대의 주둔지로 사용되었다.[5]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포르테 벨베데레를 천문 관측 용도로 사용하였고 1633년에 종신형을 선고받은 뒤로 그는 요새에서 멀지 않은 아르체트리 별장 (Villa Arcetri)에서 거주했다.[6]
요새의 중심부인 벨베데레 광장에 위치한 화려한 저택은 요새보다 이전의 것이며 1570년경 바르톨로메오 암만나티가 설계하였다.[9] 요새의 부수적 목적이 사회적 소요 사태가 일어나거나 및 전염병이 창궐하면 대공이 체류하는 것이기에, 안락하고 화려한 궁전으로 지어졌다. 군사적 목적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건물 내부의 우물 바닥에 메디치 가문의 보물을 보관하였다.[10]
현시대 사용
오늘날 벨베데레 요새는 기념물적, 역사적, 예술적, 환경적 초점을 이루고 있으며, 방문객들에게 피렌체의 탁 트인 전망과 함께, 르네상스 건축과 군사 활동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주로 관광 명소 및 전시장으로 활용되며, 연중 내내 고급 행사 및 예술 전시회를 개최한다.[11]
2014년 5월 24일, 셀럽 부부인 킴 카다시안과 칸예 웨스트는 호화스러운 결혼식을 위해 벨베데레 요새를 빌리는 데 €300,000을 지불했다.[8]
각주
↑ 가나Parker, Geoffrey (1989). “Review of Firearms and Fortifications: Military Architecture and Siege Warfare in Sixteenth-Century Siena”. 《The American Historical Review》 94 (1): 176–177. doi:10.2307/1862182. JSTOR1862182.
↑Tuttle, Richard J. (1982). “Against Fortifications: The Defense of Renaissance Bologna”. 《Journal of the Society of Architectural Historians》 41 (3): 189–201. doi:10.2307/989873. JSTOR9898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