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정보학
커뮤니케이션학(communication studies), 언론정보학(communication sciences)은 인간의 소통을 다루는 학문이다. 세 종류의 커뮤니케이션이 있다: 구두(메시지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을 동반), 기록(메시지가 읽히는 것), 비구두 소통(사람을 관찰하고 의미를 추론하는 것)[1] 학문은 일련의 주제를 아우르는데, 얼굴을 맞대고 하는 대화에서부터 텔레비전 방송 등의 대중 매체 발산에 이른다.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학문은 고대 그리스의 수사학(修辭學, rhetoric)이 그 시초이며, 이후 신문과 방송이라는 매체의 출현과 함께 신문학, 저널리즘학, 공시학 등의 분과학문으로 발전하였다. 오늘날 언론정보학은 이 모든 것을 포괄한 커뮤니케이션 현상의 의미, 기술, 이론을 종합적으로 다루는 학문으로서 개인 및 사회의 의사소통, 신문, 방송, 영화, 광고, 인터넷 등에 나타난 커뮤니케이션 양상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과거 신문학, 신문방송학, 언론학 등의 명칭이 사용되던 때와는 달리, 언론정보학의 연구 범위는 특정 매체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 최근 정보통신기술의 급격한 변화는 매체 환경과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고, 이에 따라 언론정보학의 연구 범위 역시 확장되고 있다. 언론정보학과의 주요 진로 분야는 언론사, 방송국, 광고회사, 출판사, 잡지사, 사진, 영화, 영상, 멀티미디어 관련 분야, 기업체 홍보부서 혹은 마케팅 부서 등이며, 구체적 직업은 보통 PD, 기자, 작가, 아나운서, 리포터, 카피라이터, 광고 제작자, 영상 편집자, 영상 관련 엔지니어, 마케터 등이 있다 언론정보학의 명칭각 대학에서 신문방송학과로 부르며 학생들을 교육해왔으나 지난 1997년 3월,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신문학과가 언론정보학과로 개칭(改稱)하면서 언론정보학과가 탄생했다. 이후 대학의 학과 및 관련 학회에서 언론정보학이라는 명칭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신문방송학과로 부르는 경우가 많으며 학부제의 영향으로 일부 대학에서는 커뮤니케이션 학부, 언론학부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미국에서는 커뮤니케이션학, 저널리즘학 등의 명칭이 사용되고 있고, 독일에서는 공시학(公示學)이라는 명칭이 사용되기도 한다. 언론정보학의 역사서양 언론정보학의 역사커뮤니케이션에 관한 연구의 뿌리는 고대 그리스의 수사학이다. 이후 근대에 커뮤니케이션은 정치학, 사회학, 경제학 등 인접 학문 분야의 학자들에 의해 보조적으로 연구되었다. 17세기말부터 독일의 대학과 여러 귀족학교들(독일어: Ritter-Akademien)에서 신문과 잡지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이루어졌고, 이 시기 카스퍼(독일어: Kasper von Stieler)는 신문의 본질적 특성으로서 공시성(公示性)과 현실성(現實性), 보편성(普遍性)을 정립하였다.[2] 1690년에는 신학(神學) 분야에서 신문에 대한 연구로 첫 번째의 박사학위논문이 나오기도 했다.[2] 그러나 오늘날 언론정보학의 주요 연구 분야들이 분과 학문으로서 대학에 등장한 것은 20세기부터이다. 직업교육 중심의 언론학(저널리즘)은 20세기 초반에 유럽과 미국에서 이미 제도화되기 시작했다.[3] 미국의 경우, 19세기 말에 일부 대학이 인쇄와 신문에 관한 강좌를 개설하였으며, 1903년에 캔자스대학에서 개설된 과목은 현재 존재하는 가장 오래된 저널리즘 과목으로 알려져 있다.[3] 이후 1908년에 월터 윌리엄스(Walter Williams,1864년 6월 2일 ~ 1935년 6월 29일)가 미주리대학에 세계 최초의 저널리즘 스쿨을 개설하고, 1905년에는 윌라드 블레이어(Willard G.Bleyer)가 위스콘신대학에 1년 과정의 언론학전공 과정을 개설하여 이것이 1912년에는 학과로 발전하고 1927년에는 저널리즘 스쿨로 확대되었다.[3] 독일의 경우, 신문에 대한 연구는 일찍부터 있었으나 신문학(독일어: Zeitungswissenschaft)이 대학에서 제도화되기 시작한 것은 1916년에 카를 뷔허가 라이프치히 대학교에 신문연구소를 창설한 것이 최초이다.[3] 이어 1919년에는 뮌스터대학, 1924년에는 뮌헨대학에 신문연구소가 창설되었다.[3] 그러나 20세기 초반에 미국과 유럽에서 제도화된 언론학은 주로 언론윤리나 철학을 다루면서 언론인 직업교육에 치중하는 저널리즘 학문이었다.[3] 오늘날과 같이 언론학이 커뮤니케이션 현상을 탐구하는 학문으로 제도화된 것은 20세기 중반이다.[3] 독일에서 신문학이 공시학(독일어: Publizistik)으로 발전한 것은 1930년대 이후였으며, 본격적인 성장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야 비로소 가능하게 되었으며 이는 미국도 마찬가지이다.[3] 즉 미국의 언론학, 특히 매스 커뮤니케이션 학문이 대학에서 학과나 연구소로 제도화되기 시작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이다.[3]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은 윌버 슈람(Wilbur Schramm, 1907년 ~ 1987년)으로, 1943년에 아이오와대학의 저널리즘 스쿨 학장이 되어 사상 최초의 매스 커뮤니케이션 박사과정을 신설했다.[3] 윌버 슈람은 이후 일리노이 대학교 어배너-섐페인,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커뮤니케이션 연구소를 이끌며 미국의 커뮤니케이션 역사에 큰 영향을 주었다.[3] 슈람의 활동을 기점으로 서구 사회에서 언론학의 주류는 언론인 양성을 목표로 하는 저널리즘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연구하는 사회과학의 한 분야로 발전했다.[3] 오늘날 언론정보학은 인간 커뮤니케이션, 미디어, 문화 현상 등을 대상으로 계량분석, 기호학, 구조주의적 분석, 인문학적 방법을 망라하여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분야로는 대인커뮤니케이션, 저널리즘, 광고, 미디어 효과, 정치커뮤니케이션, 디지털 미디어, 문화연구 등이 있다. 한국 언론정보학의 역사1924년에는 김동성(金東成, 1890년 4월 25일 ~ 1969년 8월 22일)이 한국 최초의 언론학 교재 《신문학》을 저술했다. 김동성은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신문방송학을 공부했으며 귀국해서 최초의 동아일보 주중 특파원, 주미 특파원이 됐다. 1928년에는 독일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김현준이 한국인 최초로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3] 해방 이후 1947년에는 곽복산(郭福山, 1911년 ~ 1971년)이 서울에 ‘조선신문학원’을 설립하여 근대적 언론학 교육을 시작했다.[3]한국의 언론정보학은 미국의 커뮤니케이션학과 독일의 공시학의 영향을 받으며 사회과학의 한 분야로서 제도화되었다.
주요 학자
주요 패러다임
‘Green-shade'란 언론인을 비유하는 말로서, 언론인 양성을 위한 저널리즘 교육을 뜻한다. 언론활동에 대한 직업 윤리적 성격을 가지며 언론인 집단의 문화와 취재 방법 등의 교육을 중시한다. 1950년대까지 미국언론학회(AEJ)를 지배해 온 패러다임이다.
사회과학으로서의 커뮤니케이션학을 지향한 입장으로서, 객관적인 자료의 검증과 분석을 통한 경험주의적 연구를 지향한다. 슈람 이후 현대 언론정보학의 주류 패러다임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사회과학자 육성을 목적으로 한다.
물질적 하부구조가 제도적 상부구조를 형성한다는 사회주의적 시각을 바탕으로 미디어 연구를 진행했다. 인류학, 언어학에 토대를 두고 메시지 분석에 중점을 두었다. 프랑스에서 시작되어 포스트 모더니즘의 이론적 기반을 이루었다.
대표적인 비판이론으로서 문화산업, 이념적 지배장치에 주목한다.
정치경제학 연구에 비판적이며, 사소한 일상적 요소를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 1980년대 이후 커뮤니케이션 연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으며 수용자 연구에 적극적이다. 외부 링크대한민국 내 관련 학회[5]
관련 기관[5]
같이 보기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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