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합으로 대체적인 의견이 모인 상황에서 초안화에 대해 핑으로 의견의 가부를 물었으나, NZ 토끼들님 외 명확한 의견이 20일 가까이 없는 상황에서 병합을 위한 참고 자료를 제공하기 위해 일반 이름공간에서 숨기고 초안으로 이동합니다. --Jeebeen (토론) 2025년 1월 9일 (목) 18:14 (KST)[답변]
문서가 처음 등재되었을 때, 해당 문서가 종교적 수사를 비롯한 종교적 색채가 짙어 문서 등재에 반대했었습니다. 이후 여러 사용자들이 기여를 해주셨으나, 여전히 출처 등이 유타 주 신문이나 참전 용사 증언, 그리고 기념행사 관련 뉴스 등 전투 자체에 대한 출처가 아닌 제2차 자료들이 난무했습니다. 해당 문서에 대한 병합 토론을 열었고, 토론에 참여하신 분들이 가평 미군 기념비으로의 이동에도 반대했습니다. 또한 주 기여자 분들을 살펴보니, 두 분은 다중계정 악용으로 차단이 되셨고, 다른 한 분은 종교적 중립성 위반으로 차단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제가 이전에 진행했던 토론 역시 총의를 모았다고 보기에는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해당 문서의 경우, 지역 언론(유타 주), 또는 지역 행사 (경기도, 가평군, 유타주)와 연관된 출처는 많지만, 정작 전투를 벌인 중공군과 미군이 작성한 자료는 하나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제가 이전에 병합 토론에서도 제시했던 문제로, 전투에 관한 1차 사료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2차 사료만을 가지고 문서를 편집하는 것은 위키백과:확인 가능의 "확인 가능하다고 해서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에 속한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전 토론에서 중국 측 자료를 찾아볼 것을 제안했으나, 주 기여자 중 한 분이셨던 사:Footwiks 님은 이미 다큐멘터리 등 현재 제시된 출처만으로도 문서를 커버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 문서가 여전히 문서 등재 기준에 미달된다고 생각합니다만, 일단 다른 사용자 분들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 Yelena Belova (토론) 2024년 8월 14일 (수) 10:32 (KST)[답변]
유지 웬디러비님의 말씀에도 공감하나, 문서 등재 기준은 사건의 사실성으로 판단하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예를 들어, 예수의 부활 같은 경우 사실성과 무관하게 종교적, 문화적으로 중요하게 여겨지는 요소이므로 등재가 가능한 것입니다. 가평 전투도 비록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몰몬교)에서만 중요하게 여기고, 1차 사료가 없어 그 사실성을 확인할 수 없다 할지라도 현재 문서에 달린 출처만으로도 문서 등재 기준을 만족합니다. 만일 가평 전투가 실제로 없었다는 주장이 신뢰할만한 출처에 있다면 오히려 그 점을 문서에 넣는 방향으로 편집하는 것이 어떨지 싶네요. ― 사도바울 (💬✍ℹ️) 2024년 8월 15일 (목) 19:31 (KST)[답변]
질문 @웬디러비 토론 페이지 제목이 잘못된 것 같아서 이동하려고 하는데, 오히려 위키백과:삭제 토론/가평 전투 (1951년 5월)가 삭제 신청되어 있네요. 삭제 토론을 여는 대상이 정확히 뭔지 헷갈리는데, 해당 문서에 {{삭제 토론}}도 달아주세요. — Nt 2024년 8월 15일 (목) 20:46 (KST)[답변]
- 만약 삭제가 어렵다면, 기존에 제가 제시한 병합안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솔직히 이 문서 대부분이 출처가 기념행사나 전적비에 의존한 것이라서, 오히려 이전에 제시했던대로 문서를 병합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미국 한국전 참전기념비라고 문서가 있는데, 가평 전투 (1951년 5월)의 내용을 요약해서 커버할 수 있을 것입니다. -- Yelena Belova (토론) 2024년 8월 16일 (금) 10:02 (KST)[답변]
- 현재 문서에서 다루는 내용이 '참전 기념비'에 대한 내용이 아니라 전투에 대한 내용으로 잘 구성되어 있는데 내용을 축약하여 옮겨야 할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 사도바울 (💬✍ℹ️) 2024년 8월 16일 (금) 10:20 (KST)[답변]
- 중국군과 미군 사료가 다루지 않은 전투를 대한민국 사용자들이 굳이 부풀려서 만든 문서이며, 이것이 어떻게 잘 구성되었는지 도저히 납득하기 힘듭니다. 이것이 가공의 전투였다면 당연히 사실성을 바탕으로 하지 않겠지만, 전투 기념비까지 있는 상황에서 "사실성"이 판단 대상이 아니고 이걸 가평 전투가 실제로 없었다라는 것을 입증하라는 것은, 초창기 가평 전투 토론과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상황입니다.
- 제가 이 문서에 삭제를 요청한 이유는 이 문서의 실존 여부가 아니라 적어도 대한민국 국방부, 미국 국방부, 중국 군사자료 등에서 해당 문서를 다룬 적이 있었냐는 것입니다. 전투가 실존했기에 전투 기념비가 있고, 경기도와 가평군이 행사를 열고 다큐멘터리를 제작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에 대한 1차 출처를 확인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요.
- 이런 선례를 남긴 것 자체가 솔직히 더욱 이해하기 힘듭니다. 전투 구성도 단일 출처에 의존하고 있고, 그렇다고 그 문서의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현재 중국군이나 미군 자료를 주 편집자 분들이 제시하지 않아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삭제 토론 발의자에게 해당 문서의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 검증을 하라고 하면, 굳이 삭제 토론을 열 필요가 없지 않았을까요.
- 이 문서의 편향적 출처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삭제 의견을 유지하도록 하겠습니다. Yelena Belova (토론) 2024년 8월 16일 (금) 21:11 (KST)[답변]
- '잘' 이라는 표현을 제가 괜히 붙인 것 같아 마음이 쓰이네요. 해당 표현은 무르겠습니다.
- 제3자가 쓴 대한민국, 미국, 중국 군사 사료로 교차검증 되지 않았기 때문에 문서가 묘사하는 내용을 믿을 수 없다는 말씀 이해하고 있습니다. 다만 현재 정책상 문서의 내용이 실제 역사상을 잘 반영하는지 여부는 등재 기준을 판단하는 기준이 아닙니다. 저는 "독립적인 신뢰할 수 있는 출처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진다"는 관점에서 이 문서가 유지될 수 있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 "독립적인 신뢰할 수 있는 출처"로 지지받는 내용들이 사실인지 아닌지 의심되나 반대되는 마땅한 출처가 없다면 그 내용을 부정하거나 삭제하기 어려울뿐더러, 독자 연구로 빠질 위험성도 있습니다. 사실성이 의심되는 내용들이 있다면 단언적 표현들을 주장으로 논조를 바꾸는 것이 현재 위키백과의 정책과 지침 하에서 최선이지 않을까 합니다. ― 사도바울 (💬✍ℹ️) 2024년 8월 16일 (금) 22:29 (KST)[답변]
- 일단 그렇다면 다른 분들 의견을 들어보고 만약 여전히 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논조를 바꾸는 걸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문서의 질을 조금 더 높일 수 있도록 위키프로젝트나 함께 검토하기 등도 고려하도록 하겠습니다. 차분한 답변, 정말 감사드립니다. Yelena Belova (토론) 2024년 8월 20일 (화) 10:12 (KST)[답변]
예완료 중립적이지 않은 내용을 제거했습니다. 더 제거해주셔도 됩니다. --117.111.13.87 (토론) 2024년 10월 1일 (화) 19:33 (KST)[답변]
유지 사료를 찾았습니다. Unypofol (토론) 2024년 8월 21일 (수) 21:45 (KST)[답변]
- 그리고 원래도 사료가 있었습니다. 원래 있었던 [8]번 각주는 1차 사료 같은데요. 저자가 6.25 참전한 군인입니다. 시기는 1951년이고요. Unypofol (토론) 2024년 8월 21일 (수) 21:52 (KST)[답변]
- 밴 플리트는 미국 장성 아닌가요? 전쟁사가가 아닙니다. --Jeebeen (토론) 2024년 8월 26일 (월) 11:36 (KST)[답변]
- 1차 사료는 동시대 또는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이 직접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기록한 편지 자서전 사진 유물 등입니다. 전쟁사가가 쓴 건 2차 사료 아닐까요? Yelena Belova님은 1차 사료를 찾으셨고 그래서 제가 찾은 건 1차 사료입니다. Unypofol (토론) 2024년 8월 29일 (목) 20:47 (KST)[답변]
삭제 @웬디러비, Unypofol, 사도바울: 개인적으로 관심 없는 주제라 딱히 참여를 안 하고 있었는데, 문서를 검증해 보고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가평 전투에서 있었던 일화일 뿐인데, 그렇다고 하면 베저위붕 작전에서 4월에 몇 시간 동안 벌어졌던 하데슬레브 전투까지 포함해야 하는 건가 싶습니다. 왜요? 유명하니까요. 한국전 초기 수류탄 들고 북한군 전차에 올라 탄 일화까지 백과사전 항목에 포함해야 하나요? 아니면 곡사포 부대가 북한군 전차에 직사 사격했던 희생의 일화도 싣어야 하나요?
- 문제는 사료가 없다는 게 아니라, 전쟁사 관점에서 굉장히 중요했던 사건인 것마냥 오도한다는 데 있습니다. 유타주의 지역 사회 입장에서 중요할 뿐입니다. 예를 들어 브리검영 대학의 교수가 전쟁사에 '이렇게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적 없다'는 논평도 해당 출처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파악하면 가평 전투를 말하는 거지 가평 전투 (1951년 5월)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이 출처에선 그때 일화를 짚어서 말하는 게 아니라 미군과의 전투에선 이러했다는 정도의 언급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어폐가 있는 내용과 중연부연한 내용을 쳐 내고 나면 뭐가 남나요? --Jeebeen (토론) 2024년 8월 26일 (월) 11:34 (KST)[답변]
- 어차피 제가 멘션 드린 분들 중 대부분은 이 문서를 작성하지 않으셨고, 따라서 여러분께 화가 난 게 아닙니다. 좀 격한 어조로 썼습니다만 전 전형적인 출처 위조와 취사 선택 및 부풀리기의 예라고 보고 있습니다. 출처가 있다고 해서 모두 공신력 있는 글이 된다고 생각하진 않기 때문에 강조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Jeebeen (토론) 2024년 8월 26일 (월) 11:42 (KST)[답변]
- 혹시 정책과 지침을 인용하여 삭제 의견을 내 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이 글이 뭔가 호도하기 위해 쓰여졌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습니다. 그냥 다큐멘터리 등 2차 자료들이 충분히 있는 것으로 보여서 유지 의견 냈던거라서요, 이 부분에 대해서도 의견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도바울 (💬✍ℹ️) 2024년 8월 26일 (월) 16:07 (KST)[답변]
- @Sadopaul: 백:아님#뉴스, 균형 있게 다루기를 들고 싶습니다. 또한 출처가 문제가 된다면 그 출처는 없는 걸로 보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은 너무 당연한 거고요. 표창을 받았다고 되어 있는 것도 내용 전문을 살펴 보면 해당 부대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몇몇 분들의 의견을 취합하여 삭제까지는 아니더라도 중공군 춘계공세, 유타주 방위군에 간략하게 서술할 만한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념에 대한 내용만 많고 해당 주제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출처는 너무 적습니다. --Jeebeen (토론) 2024년 8월 28일 (수) 21:30 (KST)[답변]
- 제가 출처를 다 검토하지는 못했습니다. 말씀대로 잘못된 출처가 있는 경우가 종종 있긴 한데요, 일단 그런 경우는 문서에서 제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다큐멘터리들 만으로도 이 주제의 등재 가능성은 충분히 확보되었다고 보고 있어서요. 이 경우 평행선이 되겠네요. ― 사도바울 (💬✍ℹ️) 2024년 8월 29일 (목) 20:51 (KST)[답변]
의견 독립 문서로 만들지 않더라도 스바토베-크레민나 전선 전투가 루한스크 전역으로 병합된 것처럼 해당 전투를 포함한 전역으로 병합할 수도 있습니다. 유지하든 삭제하든 정교한 서술을 위해 이 전투의 상위 개념을 찾는게 필요합니다. 2001:2D8:E14F:1B2F:0:0:545:C0B1 (토론) 2024년 8월 26일 (월) 23:18 (KST)[답변]
- 늦은 답변입니다만, 상위개념이라면 중공군 춘계공세가 상위개념이 될 것입니다. -- Yelena Belova (토론) 2024년 9월 2일 (월) 13:17 (KST)[답변]
의견. 모르는 주제이지만, 문서 등재 기준을 충족시키는 주제도 다른 주제에 병합하여 다룰 수 있습니다. 다수의 출처에서, 이를테면 이 주제를 거의 항상 다른 주제를 다룰 때 “지나가면서” 언급한다면, 이 문서를 다른 문서에 병합할 충분하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慈居 (토론) 2024년 8월 30일 (금) 17:37 (KST)[답변]
유지 ⓛ 2022년 유지 총의가 뒤바뀌말한 요인이 없으며 왜 삭제 토론이 다시 열려야 하는지도 이해 불가입니다.
즉 Yelena Belova님은 아래와 같은 이유를 제시했지만 이런 자료 제시한 분들이 차단당한 분들이라고 저명성을 증명하는 자료들이 위조된 자료들이 아닌데 이 문서의 편집과 토론에 참여했던 분들이 차단 당했기 때문에 삭제 토론을 다시 열어야 한다는 아래 Yelena Belova님의 논리는 납득이 안 갑니다.
"또한 주 기여자 분들을 살펴보니, 두 분은 다중계정 악용으로 차단이 되셨고, 다른 한 분은 종교적 중립성 위반으로 차단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제가 이전에 진행했던 토론 역시 총의를 모았다고 보기에는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면 만약에 Yelena Belova님이 미래에 차단 당하면 Yelena Belova님이 작성자 혹은 주기여자이거나 토론에 참여한 이런 Yelena Belova님과 관계된 문서들은 삭제 토론에 회부해야 하나요?
2022년 총의 유지 이후에 국내 기준 저명성을 만족하는 아래와 같은 자료들이 위조되었던 자료들로 뒤늦게 밝혀졌으면 삭제 토론이 다시 열려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고서는 삭제 토론이 열릴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 중앙일보, 미군 600명이 중공군 4000명을 물리친 기적의 가평전투[1]
- 동아일보, 기적의 전투 기사[2]
- 한미우호협회, 기적의 전투[3]
- 나라사랑신문, 기적의 전투[4]
- KBS, 가평 전투, 미국 유타주 씨더시에 600명의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이 있었다. KBS 다큐멘터리 2013.08.27.[5]
- KBS, 가평 전투, 미국 씨다Cedar시 참전용사 600명의 기적[밀덕실험] KBS 2009.06.24.[6]
- 미213야전포병대대 600명과 중공군 4000명과의 전투에서 전사자 0명으로 승리한 기적의 전투[7]
- Miracle at Kap Yong[8]
- 해당 항목에는 위와 같은 외부링크가 보완되었습니다.
② 정작 전투를 벌인 중공군과 미군이 작성한 자료는 하나도 제시하지 않았다고 되어 있기 때문에 등재 기준 미달이라고 주장하셨는데 일단 중국군이 패배하고 손실이 많은 전투이기 때문에 중국군 사료에서는 전혀 안 다루는 것은 솔직히 이상할 것이 없는 것이고 1951년 미 제10군단 포병단장 길모어 준장이 제213 야전포병대대의 가평 전투 전공을 치하하는 원문 레터 등 미군 사료들은 찾아보면 아래처럼 나옵니다.
https://web.archive.org/web/20240821053924/https://ut.ng.mil/Portals/40/Documents/History%20Highlight_Mar%202023.pdf?ver=pqQftUV3eD2eYKfof-Ifkw%3D%3D
미국에서는 널리 알려진 유명한 전투가 아니라 저명성 충족이 안 되어서 영어 위키피디아에는 등재가 안 될 수 있겠지만 국내에서는
위와 같은 자료 이외에도 국가보훈부에서 2015년 5월 이달의 전쟁영웅으로 제213 야전포병대대 지휘관으로 프랭크 델리 중령 선정했었고 [[9]] 전쟁기념관에도 관련 자료 있고 [[10]] 국내에서는 충분히 저명성을 갖추 전투임에 이론의 여지가 없으며 이에 따라 문서가 등재된 것으로 위키백과 등재 규정상 아무런 하자가 없습니다.
한국인 혹은 한국 제품인데 한국에서는 잘 모르지만 외국에서는 유명해서 외국 위키피디아 문서만 생성되어 있고 이런 케이스 혹은 반대로 외국산이지만 본국에서는 인기 없고 한국에서만 인기 있어서 한국어 위키피디아 문서만 생성된 케이스와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합니다.Footwiks (토론) 2024년 11월 27일 (수) 22:42 (KST)[답변]
- 이 분도 토론의 맥락을 계속 오해하시네요. 총의 형성에 오류가 있었음을 지적하는 것이지요. 지난 삭제 토론에서 유지 토론으로 결정이 났을 때, 두 분이 동원 계정이고, 한 분이 종교적 이유로 제재를 당하셨으면 당연히 토론에서 기본적으로 지켜져야 할 중립성이 심각하게 위배된 것 아니겠습니까. 처음부터 종교적 의도가 다분했던 문서인 걸 유지요. 심지어 위키백과:동원 계정이나 위키백과:다중 계정으로 토론을 조작하는 경우도 많은데요.
- 이 문서를 유지시키고자 안간힘을 쓰시는데 ' 중국군 사료에서는 전혀 안 다루는 것은 솔직히 이상할 것이 없는 것이고"라는 본인 주장 역시 모순입니다. 현재 본인께서 제시하신 출처 자체도, 미군이 가평 전투에서 이겼다는 내용을 부풀리기한 내용이며, 출처 지역도 유타 및 유타 내 공동체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이것은 위키백과:중립적 시각에 위배되는 겁니다. 같은 말을 반복하게 만들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Yelena Belova (토론) 2024년 12월 2일 (월) 16:47 (KST)[답변]
질문 다른 것을 떠나서 "망해가는 위키백과" 하는 것이 시간낭비이며 나무위키나 하자는 분이 왜 또 오셨나요? Braveattack (토론) 2024년 12월 2일 (월) 16:50 (KST)[답변]
의견 나무위키가 위키백과보다 나은 점이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그 내부로 들어가면 나무위키가 더 문제가 많은 거로 알고 있습니다만(라레나가 대표적인 경우죠), 그것은 여기 토론에서 이야기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아 더 말하지 않겠습니다. 해당 전투가 완전히 가상의 전투는 아닙니다만, NZ 토끼들님, Jeebeen님의 의견처럼 단독 문서로 등재하기에는 침소봉대가 된 측면이 없잖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위에서 몇몇 분들께서 주신 의견처럼 상위 전투 문서에 병합하여 서술하는 것이 적절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YellowTurtle9 (토론) 2024년 12월 2일 (월) 21:22 (KST)[답변]
의견 만약 해당 전투에 대해 "병합"이 필요하다고 본다면, 해당 사건을 중공군 춘계공세에 해당 내용을 병합하도록 하겠습니다. 이건 위의 대안을 제시한 분들의 말씀처럼 상위 문서에 병합하는 쪽을 존중하는 방식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 Yelena Belova (토론) 2024년 12월 5일 (목) 11:21 (KST)[답변]
- 어떻게 되어도 괜찮습니다만 병합하실 때 내용을 너무 많이 삭제해주지 않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마냥 없어지기만은 아까운 정보라고 생각해서요.. ― 사도바울 (💬✍ℹ️) 2024년 12월 5일 (목) 19:37 (KST)[답변]
- 그러면 일단 병합으로 해당 내용을 종결하되, 선더볼트 작전의 예처럼 최대한 중립적으로 잘 서술해보도록 하겠습니다. Yelena Belova (토론) 2024년 12월 12일 (목) 15:19 (KST)[답변]
- 다른 분들이 반대하시지 않는다면, 병합으로 의견을 종결지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Yelena Belova (토론) 2024년 12월 12일 (목) 15:19 (KST)[답변]
- @NZ 토끼들: 병합으로 종결하되, 병합을 한다 하더라도 해당 내용을 참고는 해야 하니 초안 이름공간으로 옮기는 걸 생각하고 있습니다. 복구토론에서도 초안 문서에 삭제된 내용을 참고를 위해 올려 놓는 방식으로도 초안 문서는 활용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단 초안으로 이동한 뒤 해당 내용을 참고하여 중공군 춘계공세에 넣고, 유타주 방위군을 추후에 신설하여 추가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 @Sadopaul, Unypofol: 유지 의견을 내신 분들께서도 동의하실 수 있는 방안인지 마지막으로 확인하겠습니다. Footwiks님은 1년간 차단되어 이를 확인하실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도 하고, 관리자 용인 학생님의 의견처럼 의견 개진을 방해하기 위해 유지 의견을 냈을 가능성이 높아 취소선 처리하고 따로 가부를 더 여쭙진 않습니다. --Jeebeen (토론) 2024년 12월 23일 (월) 10:14 (KST)[답변]
- 추가적으로 필요하다면 확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Jeebeen (토론) 2024년 12월 23일 (월) 10:19 (KST)[답변]
- 초안으로의 이동에 동의합니다. Yelena Belova (토론) 2025년 1월 9일 (목) 09:33 (KST)[답변]
※ 위 토론은 보존되어 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편집하지 말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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