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제 처리합니다.--분당선M (토론) 2019년 6월 22일 (토) 14:35 (KST)[답변]
김관은 김해 김씨 삼현파(三賢派)의 파조(派祖)로, 무오사화의 발단을 제공한 것으로 유명한 김일손(金馹孫)의 6대조입니다. 제가 알기로 김관에 대한 신뢰성 있는 기록은 김종직(김일손의 스승)이 작성한 『김극일 효문명』이 전부인데, 김관의 행적은 '高麗時 有名管者 始應科目 登于朝'라고 짤막하게 기록되어 있을 뿐입니다.
-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에 기술된 김관의 행적을 보면 얼핏 그가 대단한 활약을 한 인물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는 『고려사』 등의 정사에서는 물론 당대의 1차 사료에서 단 한 건도 언급되지 않습니다. 아무런 업적이 없는데 후손들이 일부러 과장해서 기록한 것은 아닌지 의심되는 대목입니다.
- 역대인물종합정보에 등재된 인물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도 등재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김관의 경우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는 참고 문헌이 제시되어 있지 않고 한 집필자가 단독으로 집필했기 때문입니다. 역대인물종합정보의 기술이라 해도 이런 하자가 있다면 신뢰할 수 없습니다.
- 김관은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에도 등재되어 있으나, 이 사이트 자체가 기본적으로 신뢰도가 낮습니다. 참고 문헌 역시 2004년에 나온 『창원 향교지』 등이 전부입니다.
위와 같은 이유로 삭제를 요청합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김관이 한 파의 파조인 만큼 김해 김씨 문서에서 기술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됩니다. --全彦謙 (토론) 2018년 12월 11일 (화) 17:12 (KST)[답변]
한국역대인물종합시스템에 물어봤는데 참고문헌이 고려사절요라고 합니다만 명확하지 못해 애매하군요. 솔직히 저도 묘지명 외에는 근거를 찾을수가 없어서 말입니다. 김해 김씨 문서로 넘겨주기 하거나 없애도 상관 없을것같습니다.--가라마스 (토론) 2018년 12월 12일 (수) 00:58 (KST)[답변]
유지 위키백과 참여자인 우리는 “아무런 업적이 없는데 후손들이 일부러 과장해서 기록한 아닌지 의심”할 수는 있어도, 전언겸님이 의심한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해당 문서 토론에서도 알려드렸는데,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은 위키백과가 신뢰하는 출처입니다. 신뢰할 수 있는 출처가 분명한 인물이므로, 문서를 그대로 두어야 합니다. 전언겸님은 그 의심을 위키백과가 신뢰하는 출처를 갖춰 풀어 내시면 됩니다. 의심만 갖고 객관적 출처를 제시하지 못하면 위키백과에서 공식 정책으로 채택한 위키백과:독자 연구 금지를 어기는 것입니다. 위키백과의 공식 정책인 위키백과:확인 가능, 위키백과:신뢰할 수 있는 출처 등을 읽으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위키백과에 참여하는 우리 모두는 대개 비전문가입니다. 우리는 확인 가능하고 신뢰할 수 있는 출처에 기대어 사실을 얘기할 수 있을 뿐입니다.----Dalgial (토론) 2018년 12월 12일 (수) 10:02 (KST)[답변]
출처가 충분하다는 말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역대인물종합정보가 대체 어떤 '사료'를 참고했는지요? 또한, 객관적인 출처를 제시해야 하는 쪽은 제가 아니라 이 인물의 등재를 원하는 쪽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현재 역대인물종합정보에도 김관의 등재 취소를 요청한 상태인데, 고려해 보겠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全彦謙 (토론) 2018년 12월 12일 (수) 21:45 (KST)[답변]
삭제 1990년 전북대학교 전라문화연구소에서 발표한전라문화의 맥과 전북인물 : 제 2 편 전북인물 ( 사전부 ) ; 가부 (部) (3) - 김공실 ~ 김상민에서 김관에 대한 내용이 있는데 "고려사절요", "고려사", "안회(安晦)헌선생실기(軒先生實記)", "문정공신도비명(文貞公神道碑銘)"라는 출처를 인용했다고 합니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서는 못찾겠고 안회헌선생실기는 아마 조선 후기-대한제국 시기(1763년, 1816년, 1883년, 1909년)에 간행된 안향의 사적을 모은 회헌선생실기를 말하는 것 같은데 어떤 내용이 있을진 모르겠습니다. 확인 부탁해요. 문정공신도비명은 아마 "판도판서문정공정성헌선생신도비명"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 같은데 이 비가 청풍 김규식이라는 사람이 1951년 만든 비석이라고 하네요. 현대 정치사에 나오는 김규식이라면 그 양반은 청풍 김씨라서 김해김씨랑 별 연관이 없을 텐데 동명이인인가 봅니다. 여튼 신뢰할 수 있을진 모르겠습니다;
여튼 신뢰할 수 있는 1차 사료에서 언급도 안되고 그 출처도 사후 몇 백년이 지난 후에 만들어진 것들이니 글쎄요... 등재는 어렵겠습니다.--고려 (토론) 2018년 12월 16일 (일) 23:59 (KST)[답변]
- @고려: 회헌선생실기는 장서각, 중앙도서관 사이트에서 온라인으로 이미지 파일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기가 어렵죠;;) 한국학종합DB에서는 기관회원에게 원문 제공하고 있는데 여기는 텍스트화하여 검색을 쉽게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보기가 쉬운데 대학생 이상이 아니라면;;;)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9년 1월 26일 (토) 19:33 (KST)[답변]
- @일단술먹고합시다: 한국학종합DB를 찾아봤는데, 정말 안타깝게도 한국학종합DB에서도 텍스트화하지 않은 이미지 파일로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단지 범례만 마련되어, 범례를 클릭하면 해당 페이지로 넘어가게는 해 두었는데, 내용물 자체는 이미지였습니다. 그래서 혹시 텍스트화하여 제공하는 곳은 없을까 싶어 검색을 더 하다가 이런 링크를 발견했는데, 순환참조인 것은 마찬가지더군요. 아무래도 말씀하신 대로 《호남인물 기초자료》를 확인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吳某君 (토·기) 2019년 2월 11일 (월) 04:00 (KST)[답변]
삭제 사:Dalgial님의 유지 의견이 달리긴 하였지만, 나름 찾아본 바 사:전언겸님의 추론이 합당해보입니다. 일단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은 사업 개요를 보듯 수합을 목적으로 하는 곳이지 신뢰도를 목적으로 하는 곳은 아닙니다. 그래서 위키백과에서는 백:신뢰할 수 있는 출처라 하기 어려운 족보 등도 주요하게 다루며, 계연수 항목 같이 그냥 순환 출처를 써놓은 경우도 있습니다. 사실 백과사전은 정몽주나 윤관 등의 사례처럼 그 참고 문헌을 충실하게 달아놓는 게 기본입니다. 이를 통해 비전문가라도 백과사전을 그저 믿는 게 아니라 그 내용들을 검증하는 게 가능합니다. 그런데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에서의 김관 항목은 참고 문헌으로 '『호남인물 기초자료』(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단)'만을 제시했을 뿐입니다. 여타 백과사전 항목과는 다르게 기타 참고 문헌은 제시되지 않았습니다. 『호남인물 기초자료』(2006)를 직접 백:확인한다면 더 확실해지긴 하겠습니다만, 이것저것 앞뒤 사정을 통해 추론해보자면 아무래도 후대의 가미된 기록에 기반한 것 같습니다. 다만 미처 찾지 못한 기록이 있을 순 있습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9년 1월 26일 (토) 19:33 (KST)[답변]
2018년 12월 사:전언겸께서 발제하셨고 2019년 2월 사:오모군님의 의견 이래 어떠한 의견이 달리지 않았음에도 삭제 토론에 관리자의 판단이 전혀 없었다는 것은 문제가 좀... 심각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해당 논제에 대한 나름의 의견 교환들이 있었고 사:Dalgial님의 유지 의견이 달리긴 하였습니다만 이에 대한 문제점 역시 충분히 남겨진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따라 백:삭제 신청을 하려고 합니다. '날치기'라는 오해를 피하고자 일부러 각 사용자에 대한 링크를 달았으며 일정 시간 이내 주효한 반박 의견이 없다면 그에 입각하여 백:삭제 신청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이 시간이 되도록 가타부타 발언이 없는 관리자님들께 대해서는 이건 좀 아니라는 심각한 우려의 말씀을 남깁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9년 5월 20일 (월) 19:41 (KST)[답변]
※ 위 토론은 보존되어 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편집하지 말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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