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참고 문헌 목록을 포함하고 있으나, 각주가 부족하여 출처가 모호합니다. 더욱 정확한 각주를 적용하여 이 문서가 향상되도록 도와 주세요.
전남노농협의회 (全南勞農協議會, 1931년10월~1932년6월 )는 전남지역에서 노동자, 빈농을 규합하여 혁명적 노동조합, 농민조합을 조직하고 이와는 별도로 지식인, 학생층을 중심으로 반일, 반제국주의 동맹을 결성하여
이를 통일적으로 지도하고자 했던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이다.
조직전 배경
1927년 김기선, 이응규, 이병호, 권대형은 동경 유학중에 고려공산청년회 일본부, 제3차 조선공산당 일본총국에 입당하여 활동하다 1928년 5월 사건이 발각되자 일본경찰의 체포를 면하려고 1929년 7월까지의 사이에 전후하여 조선에 돌아와
지리산을 중심으로 전전하면서 이응규는 경남 산청군 삼장면 대원사 大源寺에, 김기선은 전남 곡성군 죽곡면 태안사 泰安寺에 잠복하면서 1929년 8월경 산청군 대원사에서 김기선, 이응규, 강갑영, 권대형, 김계영, 박원효, 이병호가 회합하여
장래의 공산주의 운동을 약속하고 헤어졌다. 1930년 8월 권대형은 김기선과의 협의에서 먼저 전남 광주의 상황을 탐지하기로 한다.
권대형은 강갑영을 전남 조직책으로 하여 1930년 9월에 광주에, 김기선은 윤영기를 1930년 9월 목포에 보내고, 김기선 자신은 이응규와 함께 전주에 잠입하여 박만춘, 송기종외 수명을 동지로 획득하여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박만춘, 송기종 두 사람을 1932년 2월 광주로 보내게 된다. 1931년 1월 이응규는 김기선의 명령에 의하여 광주에 잠입하여 강갑영을 방문한 후 목포에 들어가 목포에 잠입 중이던 윤영기를 만나 광주, 목포지역의 운동상황을 점검하였다.
전남노농협의회 조직
1931년 12월 19일 광주읍 동정 東町 소재 안채수의 집에서 김기선, 이응규, 김호선, 윤승현, 김준수, 송기종, 박만춘, 김백동, 김영석, 정시환이 회합하여 전남노농협의회를 조직하였다. 내부조직으로 조직부, 노동농민부, 반제 反帝부 3부를 두었다.
그 다음날 김기선, 윤승현은 3부의 책임자로 김호선, 박만춘, 김백동을 선출하고, 1931년 12월 하순 김호선등은 협의결과 기존 3부외에 재정, 출판, 교육, 조사의 4부를 추가로 정하여 7부로 하기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