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산악사단 (독일 국방군)
제1산악사단(독일어: 1.Gebirgs-Division)은 독일 국방군에서 산악 작전을 위한 유일한 부대로 1935년 6월에 창설되어 단대호 없이 존재했던 산악 여단(독일어: Gebirgsbrigade 또는 독일어: Gebirgs-Brigade)을 근간으로 하여 4월에 창설되었다. 창설 직후에는 단대호가 없었지만,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산악 지대에서 산악부대의 활약상을 재인식하여 새로운 종류의 보병사단 시리즈를 시작한다는 의미로 단대호로 "1"이 주어졌다. (에르빈 롬멜도 산악부대에서 싸웠다). 부대 역사제1산악사단은 기존 산악 여단을 1938년 4월 9일에 개편하여 창설되었다. 이 산악여단은 1935년 독일이 재무장을 선언하면서 창설된 유일한 산악부대였다. 이 부대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의 산악전 전통을 계승했는데, 제1차 세계 대전 종전 후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이때의 전투 기록을 보관하고 핵심요원들로 소규모 산악부대를 유지하고 있었던 덕분에 재무장 선언과 함께 여단급 부대로 확충될 수 있었다. 제1산악사단은 이 산악 여단을 기반으로 확대/개편한 것이다. 제1산악사단은 폴란드 침공전과 프랑스 전투에서 참전했고, 영국과 지브랄타 공격에 동원될 예정이었으나, 두 작전 모두 취소되었다. 1940년 가을에는 1개 연대가 5 산악 사단 창설을 위해 차출되기도 했다. 1941년 봄, 제1산악사단은 발칸 전역에 참전했으며, 바르바로사 작전을 위해 남부집단군으로 새복되었다. 1942년, A 집단군 산하로 코카서스 점령작전에 참가했지만, 실패하였다. 1943년, 몬테네그로와 그리스로 철수한 제1산악사단은 점령지 임무와 빨치산 토벌작전에 동원되었고, 1944년 말, 헝가리의 최전선으로 복귀했다. 폴란드에서 펼쳐진 9월 전역 동안 제1산악사단은 Przemyśl 시에서 유대인 검거 및 처형을 포함하여 시민을 상대로 한 잔학행위에 가담했다. 이것은 사단의 사진 앨범에도 나와 있다. 사진은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보관됨 2007-03-11 - 웨이백 머신 1943년 9월, 이탈리아가 연합군으로 돌아서자 (이탈리아는 9월 3일 항복하였고, 이후 독일에 선전포고하였다), 제1산악사단은 그리스의 케파놀리아 섬에서 5,300명 가량의 이탈리아 군인들 학살에 관여하였다.[1] [2] 전쟁이 끝나자, 제1산악사단은 오스트리아에서 미군에 항복하였다. 주요 참전 전투
역대 지휘관
부대 편제1939
1941
1943
시기별 배치 현황
기사십자장 수훈자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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