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 파롤라
카를로 파롤라(이탈리아어: Carlo Parola ˈkarlo paˈrɔːla[*]; 1921년 9월 20일, 피에몬테 주 토리노 ~ 2000년 3월 22일, 피에몬테 주 토리노)는 이탈리아의 전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현역 시절 수비수로 활약했다. 그는 현역 시절에 유벤투스에서 선수와 감독으로서 모두 국내 대회를 수 차례 제패했다. 국제 무대에서, 그는 이탈리아를 대표호 1950년 월드컵에 참가했다. 경력![]() 파롤라는 토리노 출신이다. 그는 유벤투스에서 활약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그는 1939년부터 1954년까지 300경기 넘게 뛰면서 2번의 세리에 A 우승과 1번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거두었고, 1949년을 기점으로는 구단의 주장도 맡았다. 그는 잠깐 라치오와 아르헨티나의 미들란드를 거쳐 감독일을 시작했다.[2][3] 이탈리아는 국제 무대에서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경기에 1945년부터 1950년까지 10번의 경기에 출전했고, 1950년 월드컵에서 자국을 대표로 참가했다.[2][4] 그는 감독으로서 몇몇 이탈리아 구단을 지도했는데, 안코니타나, 유벤투스, 리보르노, 그리고 노바라를 지도했다. 그는 유벤투스 2기였던 1975년에 세리에 A를 우승했는데, 그에 따라 그는 선수로서도 감독으로서도 같은 구단에서 리그를 우승했다.[2] 경기 방식빠르고, 유동적이며, 근면하고, 다재다능하고, 강인하며, 기술력이 출중한 파롤라는 힘, 체력, 대인 방어력에 힘입어 수비수와 수비형 미드필더로도 뛸 수 있었고, 이탈리아의 손꼽히는 수비수로 평가받았다. 그는 펠리체 보렐 감독의 지도 하에 WM, 혹은 이탈리아에서 체계(sistema) 전법으로 알려진 전술에서 중앙 전방 수비수를 맡았고, 이 자리는 이탈리아 축구게에서 중원 전방 조직자(centromediano metodista)로 불렸는데, 이 자리는 조직(metodo) 전법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수비와 창의적인 역할을 맡아 공을 회수하고 상대 공격수를 막기 위해 먼저 후퇴하였으며, 공을 회수한 후 후방 플레이메이커로서 공격을 전개하며 최후방 수비수 혹은 자유 선수(libero)의 기용 체계가 태동케 했다. 그는 대인 방어도 뛰어난 중앙 수비수, 혹은 저지자(stopper)로서, 측면 수비수로도 활약할 수 있었다. 그는 신사적인 선수이기도 해서, 비록 이에도 불구하고, 체육계에서 그는 상대를 저지하는데 끈질기거나 도발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에 따라 피토리오 포초는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에서 그를 대신해 마리오 리가몬티를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에서 더 많이 기용했다. 민첩하고 운동신경이 뛰어난 이 선수는, 수비 역량 외에도 공중 경합에도 발군이었고, 유소년부 시절에 공격수로 활약한 기억을 바탕으로 곡예사같은 몸놀림으로 공중공을 강타하거나 가위차기로 공을 차넣을 수 있었다.[2][3][5][6][7][8][9] 게다가 1940년대에는 이탈리아에 가위차기의 바람을 불게 해 가위차기의 남자(Signor Rovesciata)라는 별칭이 붙었고, 그는 이탈리아에서 가위차기의 선수자로 언급되었다.[10][11] 유년 시절, 파롤라는 다른 역할도 맡아보았는데, 이 시기에 선수단의 골키퍼, 측면 미드필더, 그리고 중앙 공격수를 맡았다.[2] 후평곡예사 같은 공중공 처리와 출중한 가위차기를 보여준 것으로 알려진 파롤라는 가위차기를 시도하는 와중에 찍힌 두고두고 회자되는 사진이 파니니 그룹의 로고로 쓰이게 되었다.[5] 수상선수
감독
같이 보기참고 문헌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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