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년 하계 올림픽 사격 남자 트랩
1908년 하계 올림픽 사격 남자 트랩 종목은 1908년 하계 올림픽 사격의 15개 세부종목 중 하나로, 1908년 7월 8일부터 7월 11일까지 비즐리 소총사격장에서 열렸다.[1][2] 한 국가당 최대 12명까지 출전할 수 있었으며, 8개국 61명의 선수가 출전하였다.[3][2] 극심한 비바람과 낮은 시야 등 좋지 않은 기후조건 속에서 치러진 경기였다.[2] 캐나다 출신 선수 월터 어윙과 조지 베티가 금메달과 은메달을 각각 차지하였다. 동메달은 영국의 알렉산더 몬더와 아나스타시오스 메타사스가 동점을 얻어 공동으로 수상하였다. 우승자 월터 어윙에게는 웨스트베리 경의 우승컵을 부상으로 받았다.[2] 배경오늘날 남자 ISSF 올림픽 트랩 종목이라 불리는 종목의 역대 올림픽 두번째 대회였다. 1896년부터 1924년까지, 이후 1952년부터 현재까지 모든 대회에서 열렸으며 1968년부터 1996년까지 여자 종목도 함께 열렸다.[4][2] 벨기에, 캐나다, 핀란드, 그리스, 네덜란드, 스웨덴이 트랩 종목에 처음으로 출전하였으며 프랑스, 영국은 1900년 하계 올림픽에 이어 이번이 두번째 출전이었다. 경기 방식총 3라운드로 진행되었으며 각 선수는 1차전에서 30개, 2차전에서 20개, 3차전에서 30개의 표적 (클레이 버드)를 맞추었다. 1라운드, 2라운드, 3라운드의 표적 20개는 각 선수가 어느 위치에서 나올지 미리 통보되지만 각도는 모르는 '팀 시스템' (Team System)으로 진행되었으며, 3라운드의 마지막 표적 10개는 위치도 각도도 모르는 '싱글 파이어' (Single Fire) 시스템이 적용되었다.[5] 각 라운드가 끝나면 하위권을 기록한 선수를 탈락하였다. 1라운드 이후 절반을, 2라운드 이후 다시 절반을 탈락시켰으나, 실제로 최종 결선 진출자수는 28명에 달해 참가자의 4분의 1보다 훨씬 많았다.[5] 이들 가운데 7명은 경기를 도중 포기하였다. 한 선수당 기록할 수 있는 만점은 80점이었다. 경기 일정
경기 결과대회 공식 보고서에서는 트랩 종목 전 참가자의 명단을 기재하고 있으나,[6] 점수 기록은 결선 기록만 남아 있다.[7] 첫날 캐나다가 스코어에 이의를 재기하면서 재경기가 치러지기도 했다. 영국의 존 포스탠스는 기권을 택했는데 따로 명시된 기록은 없으나 이 때의 판정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존 포스탠스는 찰스 파머, 밥 허튼과 23발로 공동 선두를 달리고 있었으나, 재경기 결과 캐나다의 월터 유잉이 27발을 기록하며 금메달을 획득하였다.[2]이로써 월터 유잉은 80발 종목 올림픽 신기록을 경신하게 되었다.
각주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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