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 3위팀인 삼성 라이온즈가 매직 2위였던 롯데 자이언츠보다 승률이 높아서 두 팀간의 준플레이오프가 펼쳐졌다. 준플레이오프 승자는 드림 1위팀 현대 유니콘스와 플레이오프를 치렀다. 여기서 시리즈 전적 1승 2패로 패배한 롯데 자이언츠는 2008년에야 준플레이오프에 올라갈 수 있었는데 3차전은 준플레이오프 사상 최초로 지방 팀끼리의 잠실경기였으며 롯데는 좌우 에이스 주형광문동환이 부상 때문에 페넌트레이스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점[1], 호세의 미국 복귀에 따른 장타력 부재 - 마땅한 톱타자의 부재[2], 유격수와 3루수의 불안[3] 탓인지 준플레이오프에서 1승 2패로 패퇴했다.
드림 1위팀인 현대 유니콘스와 준플레이오프 승자인 삼성 라이온즈가 대결하였으며 삼성은 쓸만한 좌완투수 부재에 시달려[5] 4패로 탈락해 또다시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는데 김시진 당시 현대 투수코치는 1986년11월 24일부터 3년 계약 형식으로 삼성 감독에 취임했으나 취임 첫 해인 1987년김일융의 일본 복귀, 황규봉의 코치 승격 등의 이유 탓인지 투수력이 붕괴되어[6]1987년 한국시리즈에서 스윕을 당한 데다 다음 해인 1988년 플레이오프에서 3패로 탈락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본인(박영길)이 성적부진을 선수 탓으로 돌리는 발언을 했고 이 말이 선수들의 집단항명 사태를 불러와 박영길 감독의 중도사퇴(1988년 11월 13일)를 불러왔는데(계약기간 1년 남겨둠)[7] 이 당시 집단항명 사태의 주동자로 낙인찍혀 1988년 시즌 후 고향팀 삼성을 떠난 한을[8] 풀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