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식 (축구 선수)
김원식(한국 한자: 金元植, 1991년 11월 5일 ~)은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로서 포지션은 수비수, 수비형 미드필더이다. 스스로 밝힌 선수로서의 장점은 안정적인 킥·조율 능력·강력한 피지컬이고, 부족한 부분은 적극성이다. 좋아하는 선수는 김남일과 야야 투레로, 그의 포지션인 수비형 미드필더이다.[2] 유스팀 경력김원식은 동명초등학교 3학년이던 2000년에 축구를 시작한 이후, 줄곧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수비형 미드필더로 자리잡은 동북중학교 시절, 탐라기 전국중학교축구대회에서 5골을 몰아넣으며 우승했다. 대회 MVP에 선정되며 동년배 중 단연 앞서나갔다. 동북고등학교 1학년 때 대한축구협회 축구영재 유학프로그램의 수혜자로 선발됐다. 2007년 여름에 지동원, 남태희와 함께 대한축구협회 우수선수 해외유학 프로젝트에 선발되어 프리미어리그 레딩 유소년 클럽에 입단하였다.[3] 2008년 겨울까지 꼬박 1년 반을 레딩에서 보낸 후, 2009년 1월 프랑스 리그 1 발랑시엔 FC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아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으나 프로 계약 체결을 위해선 만 18세까지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18세가 되기 불과 5개월 전 입단을 약속했던 앙투안 콩부아레 감독이 파리 생제르맹 FC로 자리를 옮기면서 최종 입단은 좌절되었다. 클럽 경력리그 2 아미앵 SC에서 입단 테스트 제의를 받은 바 있으며 2010년에는 관심을 보인 FC 낭트에서 테스트를 받아서 역시 좋은 평가를 받았으나, FC 낭트가 리그 2로 강등당하고, 설상가상 구단 경영난까지 겹치며 입단이 다시 무산되었다. 이후 FC 낭트 산하 4부리그 포 FC에서 잠시 활약하였고, 정조국이 뛰었던 AJ 오세르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 테스트 결과를 기다리던 중, 장 페르난데스 감독이 AS 낭시로 떠났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그는 한국에 돌아오기로 했다.[2] FC 서울프랑스에서의 시련을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경험"이라는 한마디로 규정한 김원식은 2012 K리그 신인선수 선발 드래프트에 지원서를 냈다.[2] 2011년 11월 9일에 열린 2012년 K리그 드래프트에서 FC 서울에 우선지명되며 입단하였다.[4] 안산 무궁화에서 군복무와 인천 유나이티드의 임대기간을 거쳐 2016년부터 비로소 FC 서울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서기 시작했다. 인천에서 임대로 활약하며 경험을 쌓은 김원식은 서울 복귀 후. 김진규의 계약 만료, 이웅희의 군입대로 빈 서울 수비를 메웠다. 또한 2016년 3·1절에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6 AFC 챔피언스리그 F조 조별리그 2차전 산프레체 히로시마와의 경기에서, 전반 31분에 신진호의 코너킥이 흐른 것을 침착하게 밀어 넣으며, 자신의 FC 서울에서의 첫 득점이자 팀의 첫 골을 넣으며, 팀의 4-1 대역전승을 이끌었다. 이날 김원식은 오스마르(왼쪽)·김동우(오른쪽)와 함께 스리백의 중앙에 배치되어 히로시마의 공격을 잘 차단해냈고, 자신의 프로 통산 첫 골까지 터트리며 맹활약했다.[5] 안산 무궁화 축구단그는 FC 서울 입단 후 1년 후인 2013년 안산 무궁화 축구단에 입단하여 2013·2014 시즌 두 시즌 간 활약하며 군 복무를 끝마치고 서울로 복귀하였다. 인천 유나이티드 FC다시 2015 시즌을 앞두고 인천 유나이티드 FC로 임대되어 K리그 입성 후 처음으로 주전으로 활약하기 시작하였다. 미드필더#수비형 미드필더로 인천의 중원에서 핵심 선수로 활약하였으나 임대 계약 조항에 따라 FC 서울과의 경기에서는 리그 경기와 FA컵 결승전에는 출전하지 못하고 관중석에서 지켜봐야 했다.[6] 광주 FC2021 시즌을 앞두고 광주 FC로 이적하였고, 이적 첫 해에 광주의 주장으로 선임되었다. 서울 이랜드 FC2022년 1월 30일, 서울 이랜드 FC로 이적했다. 2022년 2월 20일에 열린 경남 FC와의 원정경기에서 87분 김인성과 교체 투입되었다. 국가대표팀 경력
수상 내역클럽가족관계참고 자료각주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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