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율이 크게 높거나 홈런을 많이 치지는 못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강한 유형의 타자였다. 해태의 통산 5차례의 우승에 기여하였으며, 1987년 한국시리즈 MVP에 올랐다. 1989년 은퇴 후 해태 타이거즈와 쌍방울 레이더스의 코치를 역임하였는데 김인식 쌍방울 초대 감독이 소위 '일본통'이었던 이용일 쌍방울 구단주 대행과 마찰을 빚어[1]1992년 시즌 후 물러난 뒤 단행된 코치진 개편에서 살아남은 쌍방울 원년멤버 코치 중 하나였으며 이의철 구단주가 본인(김준환)을 쌍방울 4대 감독 물망에 올렸지만 이용일 구단주 대행이 "나중에는 연고지 출신의 젊은 지도자를 맞아들여도 되지만 아직은 시기상조인 것 같습니다. 어느 정도 전통을 만든 다음에 그런 감독을 영입합시다"라고 주장하여 김성근 감독을 4대 감독으로[2] 영입했다.
이후, 김성근 감독이 김기태김현욱 등 주전들을 트레이드로 잃어버린 뒤 1999년 전반기 성적 17승 59패 5무승부를 기록하는 등 급속한 전력약화를 겪어 전반기 종료 후 해임되자[3]쌍방울 레이더스의 감독 대행을 맡고 감독으로 승격되었으나[4] 쌍방울이 인수가 아닌 해체 후 재창단 형식을 취해 고용 승계가 되지 않아 수석코치가 되는 데 그쳐 프로 야구 팀 감독으로는 단 1경기도 지휘하지 못하고 시드니 올림픽 코치진으로 선임된 강병철 감독을 대신하여 2000년에 잠시 감독 대행을 맡은 게 전부였다.
결국 쌍방울 해체 후 2000년1월 창단된 SK 와이번스의 창단 수석코치를 맡았으나 같은 해 말 단행된 '쌍방울 색 지우기' 프로젝트에 따라[5] 해임되었으며 본인(김준환) 외에도 1999년 말 본인이 쌍방울 정식 감독으로 부임한 과정에서[6] 쌍방울 코치로 부임했지만 팀이 2000년 1월 해체된 후 새로 창단된 SK 와이번스에서 코치를 역임한 함학수김성현박철우이건열 코치와 쌍방울 시절부터 몸 담아 온 박상열 김만후 코치가 같은 시기 팀을 떠나야 했다. 2003년 말부터 원광대학교 야구부 감독을 맡았으며, 2017년 2월 28일 원광대학교 야구부 감독직에서 정년퇴임하였다.[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