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은 물질의 구조, 운동과 그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을 분석하는 학문이다. 이는 과학 중에서도 제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는 고대 천문학 지식에서도 유래하지만, 처음으로 물리학에 관해 출판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이다.
실험 물리학과 물리적 광학의 태동
경험적 방법을 이용해 지식을 얻는 방법은,2세기 로마 이집트에서 클라우디오스 프톨레마이오스가 빛의 반사, 굴절, 쌍안시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이다. 그는 플라톤적 사고방식을 따랐기 때문에, 자신의 이론을 입증하지 않는 실험 결과는 버리거나, 다른 합리화를 시도했다. 그의 잘못된 빛의 복사이론은 10세기까지 광학 발전에 장애물이 되었다. 이븐 알하이삼은 프톨레마이오스의 광학 이론에 반대하며 빛이 사실 물체로부터 우리 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우리가 물체를 볼 수 있다는 새로운 광학 이론을 제시했다.
7세기에, 자연 철학이 태동하며, 스콜라 주의의 물리학의 패러다임을 비판했다. 여기서 주장한 것은, 수학을 도구로 이용해서 자연의 움직임을 표현하고, 예측할 수 있으며, 이는 전 우주에 대해서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당시에는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이 자연철학 학파의 중심역할을 하고 있었다.
갈릴레이는 1609년, 자신이 발명한 망원경을 이용해, 목성의 위성을 관측하고, 메디치가의 수학자, 철학자 등용에 응시하기 위해 1610년에 《별의 메신저와의 대화》에 이 결과를 출판한다. 결과는 성공해서, 그는 많은 청중 앞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전통을 지지하던 철학자들과 논쟁을 벌이는 일을 하게 된다.
1785년 쿨롱이 실험을 통해 전기력은 두 전하량의 곱에 비례하고, 그들 사이의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는 쿨롱의 법칙을 발견하였다.
1799년에는 볼타가 연속 전류를 공급해 줄 수 있는 최초의 전지인 볼타 전지를 만들었다. 이를 발전시켜 오늘날의 건전지가 만들어지고 있다.
외르스테드는 전류가 흐르면 자기장이 생성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 발견으로 그 동안 별개의 것으로 취급되었던 전기와 자기를 통합시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를 앙페르는 수학적으로 전기와 자기를 관련시켜 앙페르 회로 법칙을 만들어냈다.
패러데이는 로런츠가 수학적으로 증명했던 전류가 자기에 미치는 영향을 통해 1831년 전자기 유도 법칙을 발견하였다. 이는 위와는 반대로 자기장을 통해 전류를 유도시키는 법칙이다. 이것은 오늘날의 변압기와 유사한 장치를 사용하여 증명되었다. 또한 1845년에는 반자성 성질과 광자기 회전효과를 실험적으로 발견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자기장의 개념을 발전시켜 자기력선의 개념을 처음 도입하였다. 이후에 1852년 《자기력선의 물리적 특성》이라는 패러데이가 쓴 논문에서 자기력선을 실존을 주장했다.
초기 맥스웰은 패러데이의 자기력선에 대해 기하학적인 표현으로 보았다. 맥스웰은 소용돌이 매커니즘을 도입하면서 패러데이의 자기력선을 물리적으로 취급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가우스는 전기와 자기의 근원에 대한 법칙인 전기의 가우스 법칙과 자기의 가우스 자기 법칙을 발견하였다. 이는 전기장은 고립된 전하에서 나오거나(양전하) 들어가며(음전하), 자기장은 전기장과 같은 고립자극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이후에 1861년 《물리적 역선에 관해서》라는 논문에서 전자기력에 대해 역학적으로 해석하게 된다. 또한 전기 입자들이 소용돌이 모양의 회전을 하고 이 회전이 물리적 실재를 표현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전자기장을 유체역학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맥스웰은 광학과 전자기학의 통합을 예견했다.
볼츠만은 슈테판-볼츠만 법칙을 통해 흑체의 단위 면적당 복사 에너지가 절대 온도의 4제곱에 비례함을 밝혔다. 또한 원자와 분자의 존재를 주장하였으며, 엔트로피를 로그를 이용해 확률로 설명하였다. 그리고 맥스웰-볼츠만 분포를 이용해 기체분자운동론을 설명하면서 오늘날의 통계역학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열에너지가 전혀 없는 온도를 기준으로 삼아 올라오는 절대 온도가 만들어졌다. 여기서 단위는 톰슨의 작위 이름인 '켈빈'을 따서 붙였다.
앨버트 마이컬슨과 에드워드 몰리는 에테르가 존재한다는 가정 하에 빛에 속도를 측정하기 위한 장치를 고안하였다. 1887년 실행하였던 마이켈슨-몰리 간섭계를 이용한 실험에서 지구의 회전과 에테르의 방향에 따른 빛의 속도를 측정하였다. 하지만 여기서 에테르의 영향을 확인하지는 못하였다. 당시의 과학자였던 로렌츠는 이러한 실험적 사실을 고전 전자기학을 통해 증명하기 위해 미봉가설을 제기하였다.
스위스 베른에서 특허국 직원으로 일하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1905년 특수 상대성이론을 제창하였다. 특수 상대성 이론의 시발점이 되었던 것은 움직이는 도체에 대한 전자기현상이 아이작 뉴턴의 고전역학과 모순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움직이는 도체에 대한 비대칭성이 역학과 전자기학 사이에 문제를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했다. 그 해결법으로 1905년 《움직이는 물체의 전기동역학에 관해서》라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이 논문에서 광속이 언제나 일정하므로 등속 운동하는 모든 물체는 고전 전자기학이 항상성 있게 적용된다는 새로운 시공 개념을 제시했다.
19세기 말 독일에서 많은 물리학자들은 전등의 필라멘트에서 방출되는 스펙트럼의 가시영역과 비가시영역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한 실험으로 복사 현상에 대해 연구하였다.
이 실험결과를 만족하는 새로운 이론을 제시한 것이 1900년 막스 플랑크였다. 아인슈타인이 광양자 가설을 제시하였던 것과는 다르게 막스 플랑크는 처음부터 빛은 입자로 되어 있다고 생각했고, 이때 플랑크는 흑체복사의 에너지가 특정한 상수(플랑크 상수)의 정수배가 되어야 한다는 이론을 제시하는데 이것은 훗날 불연속적인 에너지를 전제로 하는 양자역학의 시발점이 되었다.
아인슈타인의 광전 효과
아인슈타인의 또 다른 중요한 업적은 광전효과의 설명이다. 아인슈타인은 위의 플랑크의 가설을 이용하여 광전효과를 설명하였으며 그는 이것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게 된다. 이에 아인슈타인이 빛을 입자로 설명하자 루이 드 브로이는 입자를 파동화한 물질파를 주장하였고 이것 역시 사실로 판명되면서 그도 노벨 물리학상을 받게 되었다.
보어와 원자론
닐스 보어는 1913년 어니스트 러더퍼드의 새로운 원자모형과 플랑크, 아인슈타인의 광양자 가설, 그리고 발머 계열 선스펙트럼 등을 이용하여 새로운 원자 모형을 제안하였다. 초기의 원자 모형은 입자를 정확히 나타낸다고 보기 어려웠기 때문에 과학자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아르놀트 조머펠트가 수소 스펙트럼과 타원궤도 양자조건등을 도입한 이후에 수정된 보어의 원자론이 받아들여지게 된다. 조머펠트가 보어의 원자론을 수정한 후에도 수소 이외의 원자에 대해서는 실험에 의해 증명될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잘 설명되지 못하였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
1925년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는 사고실험을 통하여 위치와 운동량이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될 수 없음을 뜻하는 불확정성 원리를 주장하였다. 이것은 많은 물리학자들의 반감을 샀으나 닐스 보어를 비롯한 '코펜하겐 학파'로 불리는 이들이 이를 적용시켜 전자의 확률로서 설명되는 현대 원자 모형을 설명하게 되었다. 이 원리는 위의 두 개 뿐만 아니라 서로 바꿀 수 없는 두 개의 관측가능한 물리량에도 적용되어 오늘날 양자역학의 주요 사실 중 하나가 되었다.
양자역학의 수학적 공식화 이후로,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는 더욱 근본적인 양자역학 원리와 그 물리적 원리들의 수학적 구조를 통해 유도되는 성질로 알려졌다. 수학에서 두 변수 사이의 푸리에 변환에 대한 여러 성질들이 이미 알려져 있었는데, 양자역학을 통해 위치-운동량, 시간-에너지 등의 물리량의 짝이 서로 푸리에 변환 관계에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따라서 푸리에 변환이 가진다고 알려진 수학적 성질을 양자역학에 적용하면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를 유도할 수 있다. 이 밖에도, 두 관측가능량이 비가환 연산자라는 사실과 양자역학의 확률적 해석을 통해 간단한 확률론적 사실들로부터 유도도 가능하다.
19세기의 첨단 분석기법의 정밀도가 증가하면서 물리학에서는 물질의 근본적인 성질과 운동과 에너지의 보편적 법칙에 대한 더 많은 정의들이 만들어졌다. 음향학, 지구물리학, 천체물리학, 공기역학, 플라스마 물리학, 저온물리학, 고체물리학 등의 분야는 광학, 유체역학, 전자기학, 역학 등의 물리학 연구분야와 통합된 연구들을 하고 있다. 20세기에 와서 물리학은 전기, 항공 우주, 재료 공학 등의 분야와 공동연구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물리학자들은 학문을 위한 연구뿐만 아니라 정부와 기업 연구소에서도 활동하기 시작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결과로 물리학자의 수는 급격히 증가하였고, 최근 십 수년 동안 물리학은 이전의 어떤 때보다 더 세계적인 범위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