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최대의 도시로, 1995년에 승주군과 통합하여 도농복합시가 되었다. 시청 소재지는 장천동이고, 행정구역은 1읍 10면 13동이다. 동쪽으로 광양시, 서쪽으로 보성군, 화순군, 남쪽으로 여수시, 북쪽으로 곡성군, 구례군과 접하며, 인접한 동부전남권 도시인 여수 및 광양과 생활권을 연담한다.
전라선과 경전선이 만나는 곳으로, 한국철도공사 전남본부와 국가철도공단 호남본부가 소재한다. 시의 남쪽은 순천만에 접해 있고, 옛 승주군 지역은 자연 경관이 수려하고 문화 유산이 풍부한 관광지이다. 2013년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개최했고, 2010년에는 UN 선정 '살기좋은 도시'에서 은상을 수상했다.[4]
백제 시대에는 감평군(嵌平郡) 또는 사평군(沙平郡) 또는 무평군(武平郡)이라고 불렸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백제의 삽평군(歃平郡)으로 기록되어 있다. 삽평군은 원촌현(여수)·돌산군(돌산)·마로현(광양)등 3개현을 함께 다스리던 행정치소이며, 전남 지역의 다른 13개 군과 함께 무진주에 속해 있었다.[6]
남북국 시대인 757년 (신라 경덕왕 16년), 승평군(昇平郡)으로 개칭하고, 원촌현은 해읍현(海邑縣)으로, 돌산현은 여산현(廬山縣) 또는 노산현으로, 마로현은 희양현(陽縣)으로 이름을 바꾸고 영현(領縣)으로 삼았다.
고려 시대인 940년(고려 태조 23년) 전국 행정구역이 주·부·군·현으로 개편되어, 승평군에서 승주(昇州)로 개칭·승격하였다.[6] 해읍현은 여수현(麗水縣)으로, 여산현은 돌산현(突山縣)으로, 희양현은 광양현(光陽縣) 개칭되어 그대로 승주의 속현이 되었고, 곡성군의 영현이던 부유현(富有縣)이 승주의 속현이 되었다.
983년(고려 성종 2년) 처음으로 전국에 십이목(十二牧)을 두었는데, 이때 승주는 승주목(昇州牧)으로 승격되었다.
995년(성종 14년)에 곤해군(袞海軍) 절도사가 파견되었다. 그 아래에 낙안군·곡성군과 부유·광양·여수·돌산현 및 다수의 향·소·부곡을 관할하였다.[6]
시의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소백산맥의 지맥인 백운산맥이 뻗어 있어, 지형은 대체로 북서쪽이 높고 동쪽으로 갈수록 고도가 낮아진다. 시의 중앙부에 솟은 조계산(884m)을 비롯하여 계족산(468m)·갈미봉(639m)·용계산(626m)·봉두산(753m)·희아산(764m)·문유산(688m)·국사봉(526m)·수리봉(550m)·고동산(709m)·금전산(668m)·모후산(919m)·망일봉(652m)·한동산(648m) 등 대부분 1,000m 미만의 산들이 곳곳에 솟아, 이들 산줄기가 이 지역의 주요하천의 분수령이 되었다. 보성군 웅치면에서 발원한 보성강이 송광면·주암면을 지나 북류하다가 구례군과 경계를 이루면서 이 지역의 북부를 흐르는 섬진강에 합류하고, 이사천(伊沙川)이 남류하여 순천만에 흘러든다. 또한 계족산에서 발원한 동천이 주요 시가지를 흘러 석현천과 옥천을 합류하고 시가지의 동쪽을 남류하며 비교적 넓은 충적평야인 순천평야를 이룬다. 대동·조례·석현저수지 등과 주암호, 상사호 등의 다목적 댐이 주요 관개용수원이 되고 있다. 순천만의 하구에는 간석지가 분포되어 있어 그 곳을 방조제로 막아 간척지를 조성했고, 남쪽은 다도해와 닿아 있다.
기후
온화하고 강수량이 많으며, 해양성 기후의 특징이 강하다. 연평균 기온은 12.6℃ 내외이며, 1월 평균기온은 -0.4℃, 8월 평균기온은 25.2℃이다. 연평균 강수량은 1,531.3mm로서 다우지역에 속한다. 난온대삼림지역으로서 온대활엽수림이 주종을 이루며, 난대림과 침엽수림도 분포한다.
통합 이전 승주군 지역은 8·15 해방 후 조금씩 증가해오던 인구가 1970년 145,879명을 정점으로 이후 계속 줄어 전체적으로 인구유출지역임을 보여준다. 1970년대 이후의 연도별 인구를 보면 1975년 138,505명, 1980년 123,778명, 1985년 123,211명, 1990년 104,388명이었다. 1970~90년의 20년간 인구는 약 28% 감소했으며, 가구수도 1970년 24,390가구에서 1990년 20,597가구로 줄어 이촌향도에 따른 농촌지역의 일반적인 인구유출현상을 보였다.
한편 통합 이전 순천시 지역은 남쪽으로 여수반도의 여수시와 연결되고, 북쪽으로는 구례군·곡성군·보성군으로 연결되는 전라남도 동부지방의 교통의 요지에 입지하여 조선 영조 때 이미 인구 41,000명 정도의 큰 취락을 이루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순천평야와 주변 농업지역의 농산물 집산지이자 수탈거점으로서 성장하여 1920년대말에는 인구가 100,000명에 육박했다. 8·15 해방 후 일제의 수탈 거점으로서의 역할을 상실하고 1948년여수·순천 사건 등으로 사회적 불안을 겪으면서 인구가 감소되었으나 1950년대 말부터 다시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공업도시들의 급격한 성장으로 농촌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순천시의 성장은 상대적으로 위축되어 완만한 상승세를 보여왔다. 1970년 90,910명, 1980년 114,223명, 1990년 167,209명으로 1970~80년에는 26%, 1980~90년에는 46%의 인구가 증가했다.
도농복합시로 통합된 이후 1995년 말 인구는 241,889명이었고, 2016년2월 말 인구는 281,071명이다. 읍·면지역에 시 전체인구의 29.22%, 동지역에 70.78%가 분포하고 있다. 행정동별로는 왕조1·2동(68,000명)과 덕연동(43,000명)에 인구가 많고, 읍·면별로는 해룡면(50,000명)이 인구가 가장 많다. 심지어 해룡면은 대한민국의 면 중에서 인구가 가장 많다.
총경지면적 27.28km2 가운데 논 19.38km2, 밭 7.9km2로서 도시로서는 높은 경지율인 30.8를 보이고 있다. 주요농산물은 쌀·보리이며 비닐하우스를 이용한 오이·고추·상추 등의 고등 원예농업이 발달했다. 이밖에도 참깨·잎담배·인삼 등의 특용작물과 과일로는 단감 등이 생산되며 농산물의 대부분은 호남고속도로·남해고속도로를 통하여 서울·부산 등 대도시로 출하되고 있다.
수산업은 순천만에서 소규모로 이루어지며, 수산업가구는 전체가구의 3.8%에 불과하다. 주로 멸치·전어·문어·쥐치 등이 잡히고 연안에서는 굴·꼬막·바지락·소라 등이 양식되는데, 특히 꼬막과 굴 양식이 수산업의 중심을 이룬다.
임야면적이 도내에서 가장 넓지만 소나무가 주종을 이루어 목재생산량은 많지 않다. 주요임산물은 밤·대추·도토리·은행·표고버섯 등이다. 목축업은 농가를 중심으로 소규모로 이루어지며, 소·돼지·닭·산양·젖소 등의 사육농가가 늘고 있다.
예로부터 농산물 집산지로 상설시장·도매시장·정기시장 등이 발달했다.
남부·북부·승주·주암·창촌·송광·괴목·별량 등 8개 정기시장을 중심으로 상업활동이 이루어지며 주요거래품목은 농산물·해산물이다.
2012년에 남부시장과 북부시장의 명칭은 각각 아랫장과 웃장으로 변경되었다.
산업단지로는 서면 선평리 일원에 순천일반산업단지가 있으며 주암면에 주암농공단지가 조성되어 있고 광양만권경제자유구역의 개발로 인해 해룡면 일원에 해룡산업단지와 율촌제1산업단지가 조성되었다.
전라남도에서 상대적으로 철도교통이 번성한 곳으로 순천역에서 전라선과 경전선이 교차하며, 한국철도공사 전남본부가 있다. 2011년 10월 5일 전라선KTX가 개통되었다. 고속도로로는 호남고속도로·남해고속도로·순천완주고속도로를 통해 여러 지역을 연결한다. 또한 구례·곡성·보성·여수·남원·광양·광주·화순 등을 잇는 국도가 지난다.
2013년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회장을 개조해 조성한 정원이다. 순천시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로 2019년 618만명이 방문했다.
유적지
유적지로는 청동기 유적인 가곡동·용당동·덕암동·왕지동·조례동·승주읍·송광면 등을 비롯하여 보성강과 이사천 주변에 수백 기의 고인돌이 분포하며, 삼국시대 유적인 옥천동 고분이 있다. 청동기시대의 유물·유적은 별량면·상사면 등에서 발견되었으며, 주암면 구산리에서는 청동기시대의 집터가 발견되었다. 또 삼국시대 전기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15개의 집터가 송광면 낙수리에서 발견되어 귀중한 고고학적 자료가 되고 있다. 또한 낙안읍성과 삼국시대에 쌓은 난봉산의 매곡산성과 인제산의 인제산성이 있으며, 이후에 축조된 홍내산성과 석성인 순천읍성이 있다. 고려시대의 유적으로는 청백리의 상징으로 알려진 최석(崔碩)의 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팔마비(八馬碑: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76호)가 영동에 있다.
유교 문화재
조선시대 유교문화재로는 1658년 낙안면 교촌리로 이전해온 낙안향교(樂安鄕校: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12호)를 비롯하여 순천향교(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27호)·옥천서원(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4호)·옥계서원(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5호)·용강서원(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21호)·청수서원·곡수서원·송천서원·오천서원·율봉서원 등이 있으며, 임진왜란 때 순절한 장윤을 추모하기 위해 세웠다가 훗날 서원이 된 정충사(旌忠祠) 및 월계사·문천사·육층사 등의 사당이 있다. 조선시대 이곳에 유배되어 살았던 김굉필과 조위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임청대(臨淸臺: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77호)가 옥천동에 있다.
이 지역은 불교문화의 요람이라 불릴 만큼 불교문화재가 많으며, 조계산이 수려한 자연경관을 이루고 있어 전라남도의 손꼽히는 관광지이다. 한국의 3보사찰의 하나인 송광사를 비롯해 선암사·정혜사·동화사 등과 낙안읍성 민속마을·곡천유원지·주암댐·주암호·죽도봉공원·향림사계곡 등이 관광객이 즐겨 찾는 대표적 관광지이다. 특히 죽도봉 공원에는 박씨 선조인 박혁거세를 봉안하고 있는 숭성전(崇聖殿)과 고려 때 만들어진 누각인 연자루가 있다.
문화
순천문화원으로 통합되기 전까지 승주문화원에서는 각종 향토유물과 자료를 조사·정리하여 책을 편찬하는 등 향토문화발전에 기여해왔다. 민속놀이로는 강강술래·농악·선유락(船遊樂)·줄다리기·달맞이놀이·승경도놀이가 있다. 전승되는 설화는 사찰연기설화가 많다. 민요는 〈김매기노래〉·〈밭매기노래〉·〈길쌈노래〉 등의 노동요와 〈방개타령〉·〈화투타령〉 등의 유희요가 구전된다.
교육 기관
전통 교육기관으로는 순천향교와 낙안향교를 비롯해 송천서원·오천서원·옥천서원·율봉서원·이천서원 등이 있었다.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1909년에 개교한 승명학교(昇明學校)와 1917년 낙안면 동내리에 개교한 낙안공립보통학교가 있었고 이어서 황전·주암·별량·송광·쌍암·동산·해룡·외서·월등 등의 공립보통학교가 차례로 설립되었다. 2007년을 기준으로 유치원 58개소, 초등학교 38개교, 중학교 21개교, 인문계 고등학교 9개교, 전문계 고등학교 5개교[31]가 있으며, 국립순천대학교·청암대학교·순천제일대학교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