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토요일 오후 6시에 방영되었으나 동시간대 SBS 《기쁜 우리 토요일》과 KBS 2TV 《자유선언 오늘은 토요일》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자 10회(1999년 1월 27일)부터 수요일 밤 11시로 옮겼지만 SBS 《김혜수 플러스 유》의 아성을 넘지 못한 채 1999년 4월 막을 내렸는데[1] 조연급 출연진 중의 한 명이었던 김동수가 극중 1999년1월 16일 토요일 〈제8회〉를 끝으로 강원도 춘천 고향에 재귀농을 하고자 낙향을 하는 내용의 에피소드로써 완전히 하차한 후, 두 달 남짓 지난 1999년3월 9일에 음주운전 사건으로 불구속 입건된 뒤[2] 시청률이 갈수록 떨어졌으며 남녀관계나 가족의 일상을 감각적이고 비현실적으로 다뤄 서민의 애환이나 젊은 시절의 추억, 진지한 삶 등 시트콤 본래의 기능을 살리지 못했다는 지적[3] 등을 받아왔다.
서울 종로구 종로동 소재 하숙집 주인. 경상남도 산청 생초면 어서리 부농가 대농 집안의 말띠 막내 아들이지만 서울 문화중학교 1학년 유학 시절 안문숙 누나를 처음으로 만난 그는 훗날 1985년 10월 9일 결혼을 하면서 서울로 분가. 1994년 8월 당시 공군 사병 병장 전역. 그의 막내 숙부님은 왕년의 호텔 요리사 등으로 그 이름을 드높인 자칭타칭 대한민국 서양 양식 요리사 1세대 출신인 권영지(서울 중구 명동 명무세요 대표 사업주 겸 수석 대표 요리사).
권용운의 4년 연상녀 아내, 서울 종로구 종로동 소재 하숙집 안주인. 전라남도 고흥 과역면 신곡리 부농가 대농 집안의 호랑이띠 막내 여식으로 출생하였으며 서울 문화여자고등학교 2학년 유학 시절 권용운을 처음으로 만났고 훗날 1985년 10월 9일 결혼을 하면서 서울로 출가.
권용운의 서울 중랑구면목동 저택 사는 친가 막내 숙부. 1968년 8월 초순에 공군 취사병 병장으로 군필 전역한, 자칭타칭 대한민국의 서양 양식 요리사 1세대 출신이자, 1986년 8월까지 서울 문화 호텔 요리사 출신으로, 1986년 12월 이후부터, 서울 중구 명동 소재 "명동 무교마을 세발낙지 요리집(a.k.a. 명무세요)"의 대표 사업주 겸 수석 대표 요리사. 서울 종로구삼청동 저택에서 살다가 1989년 3월 24일 금요일 당시 서울 중랑구 면목동 저택으로 이사한 그는 5년 연상녀 개띠 부인(은언숙)과 사이에 각기각기로 8년째 미국워싱턴주시애틀 유학 中인 외동아들 권태수와 막내딸 권덕상이라는 둘을 비롯한 슬하 1남 2녀(3남매 - 1985년 결혼한 돼지띠생 만39세 맏딸 권지숙, 아직 만26세 미혼인 쥐띠생 외동아들 권태수, 역시 만23세 미혼인 토끼띠생 막내딸 권덕상)를 둠. 조카 권용운이 복덕방 영감님으로 뫼시는 양택조(낙원동 복덕방 대표)와는 토끼띠 만59세 동갑인 그는 일제 시대 경상남도 산청 생초면 어서리 부농가 대농 집안의 토끼띠 막내 자제로 출생. 1985년 3월 1일, 만26세 족히 되었던 장녀(권지숙)의 결혼과 더불어 맏사위(조광흡 - 인천 중구 북성동 선주 대부어(船主 大富漁) 겸 월미도 땅부잣집안의 원숭이띠 후손.)를 얻었으며, 그야말로 만46세 족히 되던 해에 빙부(장인)가 된 후 만47세로 맏외손자(맏딸 부부의 맏아들 조현승)를 보았고 만50세로 맏외손녀(맏딸 부부의 맏딸 조현애)를 보았으며 만51세로 둘째외손녀(맏딸 부부의 둘째딸 조경애)를 보았고, 둘째외손녀 본 그다음해(1991년)에 외동아들(현승 외삼촌 권태수)과, 막내딸(현승 이모 권덕상)을 모두 미국 워싱턴 주 시애틀로 유학 보냈는데, 8년 후 그는 자녀 3남매 중 1999년 3월 29일 월요일 당시 미국(시애틀 대학교 대학원)에서 공학석사 취득한지도 1개월 된 쥐띠생 외동아들(둘째 권태수)이 5개월 후 8년간의 미국 시애틀 유학 생활은야 물론이며 미국 워싱턴 주 시애틀 대학교 대학원건축학과 공학석사 유학 생활을 마치고 영구 귀국하여 공군 사병(어학병 또는 관제병)으로 입대 예정 취지를 기정적으로 분명히 밝히는 외동아들(권태수)의 국제 전화 통보를 받음.
권용운의 서울 중랑구면목동 저택 사는 친가 막내 숙모. 부군(권영지)과 사이에 결혼 13년차 맏딸과, 각기각기로 8년째 미국 워싱턴 주 시애틀 유학 中인 외동아들, 막내딸, 하여 슬하 1남 2녀(3남매)를 둠. 일제 시대 충청남도 부여 남면 내곡리 부농가 대농 집안의 개띠 막내 여식으로 출생.
강원도 영월 북면 연덕리 부농 집안의 후손. 1986년 8월, 영월 초등학교 4학년 1학기 수료 직후 일가족들과 동반으로써, 마카오(포르투갈령)에 유학 겸 이민 떠난 교포 출신으로 1998년 8월, 마카오 대학교 철학과 3학년 1학기 수료 및 휴학을 한 포르투갈령 마카오 교포 및 유학생. 노판섭의 외종사촌 누나인 동시에 마카오 국제 동양 중학교 1년 선배. 대한민국 출국 12년여만에 잠시 귀국하여 1998년 11월 초순에 서울 중구 명동 소재 "명동 무교마을 세발낙지 요리집"을 방문.
강원도 횡성 안흥면 안흥리 부농 집안의 후손. 1985년 8월, 횡성 초등학교 2학년 1학기 수료 직후 일가족들과 동반으로써, 마카오(포르투갈령)에 유학 겸 이민 떠난 교포 출신으로 1998년 8월, 포르투갈리스본 인문과학대학교철학과 2학년 1학기 수료 및 휴학을 한 마카오 교포 및 포르투갈 유학생. 장영주의 고종사촌 남동생인 동시에 마카오 국제 동양 중학교 1년 후배. 대한민국 출국 13년여만에 잠시 귀국하여 1998년 11월 초순에 서울 중구 명동 소재 "명동 무교마을 세발낙지 요리집"을 방문.
경기도 평택 오성면 죽리 부농 집안의 후손. 1968년 3월, 오성 초등학교 3학년 1학기 초에 일가족들과 동반으로써, 말레이시아콸라 룸푸르로 유학 겸 이민 떠난 교포 출신으로, 1994년 8월, 공필숙과 연애 결혼하여 자녀 1남 1녀(두 살 터울의 맏아들과 막내딸)를 둠. 30년여만에 잠시 귀국하여, 1998년 11월 중순에 서울 중구 명동 소재 "명동 무교마을 세발낙지 요리집"을 방문. 내외가 모두 말레이시아 교포 출신의 부부. 그의 아내는 공필숙.
충청북도 괴산 사리면 수리 부농 집안의 후손. 1975년 3월, 괴산 초등학교 4학년 1학기 초에 일가족들과 동반으로써, 말레이시아콸라 룸푸르로 유학 겸 이민 떠난 교포 출신으로, 1994년 8월, 노종복과 연애 결혼하여 자녀 1남 1녀(두 살 터울의 맏아들과 막내딸)를 둠. 23년여만에 잠시 귀국하여, 1998년 11월 중순에 서울 중구 명동 소재 "명동 무교마을 세발낙지 요리집"을 방문. 남편 노종복도 말레이시아 교포.
경기도 평택 오성면 죽리 부농 집안의 후손. 1968년 3월, 서울공고 3년 졸업 직후에 일가족들과 동반으로써, 말레이시아콸라 룸푸르로 유학 겸 이민 떠난 교포 출신으로, 30년여만에 잠시 귀국하여, 1998년 11월 중순에 서울 중구 명동 소재 "명동 무교마을 세발낙지 요리집"을 방문. 노종복의 둘째 형님(1983년 3월 당시에 말레이시아피낭주빠다워드 한국인 교포 아내와 사이에 결혼하여, 빠다워드 교포 처와 사이에 2녀 둠).
충청북도 보은 삼승면 우진리 부농 집안의 후손. 1970년 3월, 삼승 초등학교 6학년 1학기 초에 일가족들과 동반으로써, 중화민국타이베이로 유학 겸 이민 떠난 교포 출신으로, 1988년 8월, 한국인 홍콩 교포와 결혼하여 홍콩으로 두번째 이주 및 외동딸 있는 오광숙은, 28년여만에 잠시 귀국하여, 1998년 11월 중순에 서울 중구 명동 소재 "명동 무교마을 세발낙지 요리집"을 방문. 공필숙의 친정 이종사촌 언니. 오태숙의 친가 6촌 언니.
충청북도 보은 삼승면 우진리 부농 집안의 후손. 1973년, 해외 중화민국타이베이에서 태어난 한국인 중화민국 타이베이 교포의 후손 출신으로, 말레이시아 국립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과 경제학 석사 과정 1학년 1학기 마치고, 석사과정 휴학 2년차 중이자, 태어난지도 25년여만에 조상들의 국가를 처음으로 방문하여, 1998년 11월 중순에 서울 중구 명동 소재 "명동 무교마을 세발낙지 요리집"을 방문. 오광숙의 열다섯 살 어린 친가 6촌 누이동생.
충청북도 보은 삼승면 우진리 부농 집안의 후손. 1984년 8월, 삼승 초등학교 1학년 1학기 수료 직후에 말레이시아피낭주조지타운으로 유학 겸 이민 떠난 교포 출신으로, 캐나다 오타와 대학교 행정학과 1학년 1학기 마치고 수료 및 휴학 2년차 중이자, 대한민국 출국 14년여만에 잠시 귀국하여 1998년 11월 중순에 서울 중구 명동 소재 "명동 무교마을 세발낙지 요리집"을 방문. 오광숙과 오태숙의 친가 9촌 조카.
충청북도 괴산 사리면 수리 부농 집안의 후손. 1977년, 해외 말레이시아피낭주조지타운에서 출생한 한국인 말레이시아 교포의 후손 출신으로, 미국 하와이 주립 대학교 건축공학과 1학년 1학기 마치고 수료 및 휴학 2년차 중이자, 태어난지도 만21년여만에 조상들의 국가를 처음으로 방문하여, 1998년 11월 중순에 서울 중구 명동 소재 "명동 무교마을 세발낙지 요리집"을 방문. 공필숙의 열두살 어린 친정 5촌 조카.
경기도 평택 오성면 죽리 부농 집안의 후손. 1977년, 해외 말레이시아콸라 룸푸르에서 출생한 한국인 말레이시아 교포의 후손 출신으로, 만21년여만에 조상들의 국가를 처음으로 방문하여, 미국 하와이 주립 대학교 미술학과 1학년 1학기 마치고 수료 및 휴학 2년차 중이자, 1998년 11월 중순에 서울 중구 명동 소재 "명동 무교마을 세발낙지 요리집"을 방문. 노종규와 노종복의 친가 5촌 조카딸.
경기도 평택 오성면 죽리 부농 집안의 후손. 1977년, 해외 말레이시아콸라 룸푸르에서 출생한 한국인 말레이시아 교포의 후손 출신으로, 만21년여만에 조상들의 국가를 처음으로 방문하여, 홍콩 대학교 산업미술학과 1학년 1학기 마치고 수료 휴학 2년차 중이자, 1998년 11월 중순에 서울 중구 명동 소재 "명동 무교마을 세발낙지 요리집"을 방문. 노종규와 노종복의 친가 7촌 조카딸.
경기도 평택 오성면 죽리 부농 집안의 후손. 1977년, 해외 말레이시아콸라 룸푸르에서 출생한 한국인 말레이시아 교포의 후손 출신으로, 만21년여만에 조상들의 국가를 처음으로 방문하여, 에스파냐 마드리드 대학교 건축공업미술학과 1학년 1학기 마치고 수료 및 휴학 2년차 중이자, 1998년 11월 중순에 서울 중구 명동 소재 "명동 무교마을 세발낙지 요리집"을 방문. 노종규와 노종복의 친가 9촌 조카딸.
경상남도 창녕 이방면 옥천리 부농 집안의 후손. 1986년 8월, 초등학교 3학년 1학기 수료 직후 일가족들과 동반으로써, 뉴질랜드웰링턴 유학 겸 이민. 미국 시카고 대학교 미술학과 2학년 1학기 마치고 수료 및 휴학 1년차 중이자, 12년여만에 잠시 귀국하여, 1998년 11월 중순에 서울 중구 명동 소재 "명동 무교마을 세발낙지 요리집"을 방문. 배주엽의 5촌 외종질녀.[주 3]
경상남도 김해 상동면 감로리 부농 집안의 후손. 1986년 8월(만28세)에 일가족들과 동반으로써, 뉴질랜드웰링턴 이민. 12년여만에 잠시 귀국하여, 1998년 11월 중순에 서울 중구 명동 소재 "명동 무교마을 세발낙지 요리집"을 방문. 성연주의 외가친척 가운데 5촌 외종숙.[주 4]
경상남도 김해 상동면 감로리 부농 집안의 후손. 1986년 8월, 중학교 1학년 1학기 수료 직후 일가족들과 동반으로써, 뉴질랜드웰링턴 유학 겸 이민. 말레이시아 국립 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 공학 석사 과정 1학년 1학기 마치고, 석사과정 휴학 1년차 중이자, 대한민국 출국 12년여만에 잠시 귀국하여, 1998년 11월 중순에 서울 중구 명동 소재 "명동 무교마을 세발낙지 요리집"을 방문. 배주엽의 친가 7촌 조카.
Since 1985 연도말 특집 라디오 프로그램 "입학사정관"으로 한해말에 1회씩 모두 제14회 방송이자 라디오입학사정관 역사상 마지막 제14회 라디오 until 1998 연도말 만13년 라디오 입학사정관 제14회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제14회 라디오 입학사정관 최종회 고별 방송 예고 캐스터.
양택조와 이정배의 경기도 평택 세교동 사는 1953년생 외종사촌 남동생(조학자의 이복 친정 조카)인 조주영. 결혼하고 나서 아내 김민정과 사이에 애가 이미 둘(맏딸과 외동아들)이나 있던, 제법 20대 중후반으로 나이 먹은 때(만25세)에 병 계급으로 공군에 입대하여, 1981년(만28세)에 공군 취사병 병장으로 전역 후 1985년(만32세)에 막내딸 득녀.
1998년 11월 26일 당시 미국 시카고(일리노이 주)를 유학중에 잠시 서울(대한민국)로 귀국한 후 두 달 지난 1999년 1월 29일, 미국 시카고(일리노이 주)로 또다시 떠난 1986년 3월 이후부터 13년차 한인 교민(겸 유학생)인 미국 시카고 부잣집 교민 집안 슬하 2남 3녀(5남매) 중 막내 인찬동
1998년 12월 22일 당시부터 1999년 1월 22일 당시까지, 1개월(한 달)을 머물러 있던 서울(대한민국)을 떠나 1999년 1월 22일, 말레이시아(수도 콸라 룸푸르)로 출국하였으며 콸라 룸푸르(말레이시아)에 유학중이던 1988년 3월 이후부터 11년차 한인 여자 교민(겸 유학생)인 말레이시아 콸라 룸푸르 부잣집 교민 집안 슬하 1남 3녀(4남매) 중 막내 봉철은
이 드라마의 주조연 및 단역을 포함한 역대 총 출연진 중 최고령 출연자는 극중 양택조의 이복 고모 양복희 역으로 제2회 《비자금 사수작전》에 단역 출연한 여성 원로 연극배우 겸 연기자 김복희 여사이며, 차고령 출연자는 극중 양택조의 이복 이모 조학자 역으로 제6회 《나잡아 봐라》에 단역 출연한 여성 원로 영화배우 겸 연기자 조학자 여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