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5월 16일, 창촌으로 철수하던 제9사단이 중국인민지원군의 2개 군단에 의해 오마치 고개가 점령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5월 17일, 반격을 포기하고 현리에 집결하여 오마치 고개를 돌파하려 했으나, 조선인민군 제5군단, 제12군단, 제27군단의 공세에 대응하지 못하고 퇴각 작전은 실패하였다. 작전이 실패하면서 군단은 전투 의지와 통제를 잃었으며 후퇴하는 도중, 군단장 유재흥 소장이 지휘권한을 버리고 항공기로 이탈하였으며 5월 22일 강원도 인제군 관대리까지 후퇴하였다. 1951년 5월 26일 미국 제8군 지휘관 제임스 밴 플리트대장이 책임을 물어 유재흥의 직위를 박탈하고 3군단을 해체시켰다. 군단의 예하 부대인 제3사단, 제5사단, 제9사단과 제11사단은 각각 제8군 예하로 배속되었다.[2][4]
1953년 5월 1일, 강문봉 소장을 군단장으로 임명하고 제20, 22사단을 예속받아 강원도 인제군 관대리에서 재창설되었다.[3] 같은해 12월 15일, 제1야전군 예하 소속 군단이 되었다.
1972년 7월 27일 소양강댐이 건설되어 주둔지인 관대리가 물에 잠기자 부대를 이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