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하(아랍어: الدوحة 앗-다우하[*], 영어: Doha)는 카타르의 수도이자 최대 도시이며, 페르시아만과 접해 있다. 2015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도하의 인구는 95만 6천여 명이다.[1]
도하를 중심으로 한 광역 도시권에는 카타르 전체 인구의 85%인 약 240만명이 밀집해 거주하고 있다. 도하는 카타르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자 카타르 정부의 소재지로 카타르 국왕이 거주하며, 연구와 교육에 헌신적인 교육 도시이기도 하다. 도하는 세계 무역 기구 협상 '도하 개발 라운드'의 최초 정부 수준의 만남이 이루어진 장소였고, 2006년 아시안 게임을 개최하였다.
1825년, 도하는 알비다(Al-Bida)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는데, "도하"는 "큰 나무"를 뜻하는 아랍어 "앗-다우하" ("ad-dawha")에서 유래되었다. 그 언급은 카타르 반도의 동쪽 해안상에 초기 어업을 하는 마을이 생겨났던 그 장소에 서있었음에 틀림없었던 유명한 나무인 것이다. 1825년 카타르와 바레인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는 동안 도하는 심각한 피해를 입었으며 아부다비는 바레인을 도와주는 중이었다. 다음 해 오스만 제국이 셰이크 타니 빈 무하마드를 도하의 하킴으로 만들었다.[2] 1882년 알라이안 (Al Rayyan)이 도하 남쪽에 알와즈바 (Al Wajbah) 요새를 세웠다. 다음해 셰이크 카심이 오스만 제국에 대항하여 승리할 수 있도록 카타르의 군대를 이끌었다.
도하는 1916년, 영국의 보호국이 된 카타르의 수도가 되었으며, 카타르가 1971년에 독립한 이후에도 카타르의 수도로 남게 된다. 1917년 도시의 중심에 위치한 알쿠트 요새가 셰이크 압둘라 빈 카심 알타니에 의해 세워졌다. 여전히 20세기 초 동안 카타르 경제의 상당이 어업과 진주채취에 의존하였으며 도하는 대략 350 척의 진주채취선이 있었다. 그러나 1930년대에 일본의 세련된 진주가 소개된 이후, 도하 마을을 포함하는 전체 지역이 큰 불경기를 겪었고 카타르는 가난한 나라가 되었다. 이것은 석유가 발견되었을 때인 1930년대 후반까지 지속되었다. 그러나 탐험과 수출이 제2차 세계대전 때문에 중지되었다. 오늘날 전체적으로 카타르는 하루 800,000 배럴 이상의 석유를 생산한다. 1969년에는 정부 관저 (Government House)가 공개되었으며, 이 곳은 오늘날 카타르의 가장 두드러진 랜드마크로 간주된다.
1973년에는 카타르 대학교가 설립되었으며, 1975년에는 원래 1912년에 통치자의 궁이었던 카타르 국립박물관이 열렸다. 알자지라아랍어위성 방송 뉴스 채널이 도하에 사령부와 방송 센터를 두고 1996년에 방송을 시작하였다.
외국인이 많으며, 특히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필리핀에서 온 노동자가 많다. 레반트 지역과 북 아프리카에서 온 노동자들도 많다. 현재 카타르의 시민권을 갖지 않아도, 도하 부동산을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도하는 2000년대 중후반에 인구가 급증하여 2005년에 40만명이던 인구가 2010년에는 그 2배인 80만명에 육박하였고, 2020년에는 100만명에 이르러 주택 부족 문제가 심각하다.
도하는 아라비아 반도안에 위치하며 기후는 매우 덥고 습하다. 5월에서 9월까지 평균 섭씨 40도 이상이며 습도가 변화 무쌍하다. 이슬점은 여름에 섭씨 25도이상 위쪽에 도달할 수 있다. 여름에는 비가 거의 내리지 않으며 겨울에도 월 강수량이 25mm를 넘지 않는다.[16] 강수량이 부족하며 (1년에 평균 70 mm), 10월에서 3월까지 사이에 비가 온다. 추운 겨울 밤 동안 온도는 좀처럼 섭씨 7도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다.
경제
더 펄 카타르
카타르 경제의 중심지인 도하의 주요 산업은 석유 산업과 천연가스 산업이다. 카타르 최대의 석유 회사인 "카타르 석유 (Qatar Petrolium)", 가스 회사 "라스 가스 (RasGas)" 등 많은 회사가 도하에 본사를 두고 있다. 카타르 정부는 석유와 천연가스 수출 일변도의 경제 구조 탈피를 목표로, 산업다각화를 장려하고 있다. 그 결과 도하에서 국왕 하마드 빈 칼리파 본인의 도시 현대화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인근 아랍 에미리트의 두바이도 석유 의존 경제 탈피를 목표로하고 있으나 도하는 두바이와 달리 관광 산업이 아니라 문화, 교육, 방송에 주력하고 있다.
도하는 1973년 설립된 카타르 대학(University of Qatar)가 있다. 교육 도시(Education City) 지역은 카타르 대학을 포함한 많은 대학들이 캠퍼스들이 위치해 있다. 조지타운 대학과 카네기 멜론 대학 등 미국의 6개 유명 대학이 이곳에 분교를 두고 있다. 또한 많은 연구기관들도 위치해 있다. 도하에는 외국인의 자녀 교육을 위한 국제 학교도 운영되고 있다. 교육은 카타르 정부가 큰 힘을 쏟고 있는 분야이며, 교육 도시를 운영하는 〈카타르 재단〉이 설립되어 있다.
1994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에서 일본이 이라크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인저리 타임에 동점 골을 허용하는 바람에 사상 첫 월드컵 본선 진출이 좌절된 반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마지막 경기에서 승리를 거둔 대한민국이 본선 진출에 성공한 도하의 기적(대한민국에서 부르는 명칭으로, 일본에서는 "도하의 비극"이라고 부름)으로 유명해졌다.
2006년5월 12일 이 곳에서 열린 육상 그랑프리 카타르 대회에서 미국의 저스틴 개틀린이 남자 100m에서 세계 신기록인 9초 76을 기록했다. (5일 후에, 국제육상연맹이 타이밍 실수가 있었다고 인정하여, 9초 77로 정정되었다).
기존 도하 국제공항을 대체하여 개항한 신공항으로 IATA 공항 코드는 DOH. 하마드 국제공항은 4,850m와 4,250m의 활주로를 가진 최신 거대 규모의 공항이 된다. 카타르 항공의 허브 공항으로 사용되고 있다. 2017년 6월 카타르가 주변국에서 국교 단절 조치를 통고된 (2017년 카타르 외교 위기) 이후 에미레이트 항공과 에티하드 항공 등 이슬람 국가에 본사를 둔 대형 항공사의 항공편이 운행을 중지하고 있다.[17]
철도
도하 메트로 : 도하에 본사가 있는 카타르 레일에 의해 2019년 개통 예정으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철도이다. 도시 철도 이외에 카타르 국내의 철도 노선으로 건설되었다. 규모는 건설중인 4개 노선 85역, 163.8km에 이르며, 하마드 국제공항과 2022년 FIFA 월드컵 경기장과 도하 시내를 연결할 예정이다.
↑Kurşun, Zekeriya (2002). 《The Ottomans in Qatar : a history of Anglo-Ottoman conflicts in the Persian Gulf》. Istanbul : Isis Press. 16–17쪽. ISBN9789754282139.
↑Hassan Khayat, Ismail Amer, Saleh Arifi, Ahmed Babaker, Bassam Nasr, Nizam Shafei, Fatimah Al Kuwari, Ali Ibrahim Sheib, Mohammed Khazemi, Nasser Fakhro, Mohammed Al Kuwari (1998). “موسوعة المعلومات القطرية (Qatar Information Encyclopedia)” (아랍어). Qatar University. 235쪽.
↑“Doha”. Tiscali.co.uk. 1984년 2월 21일. 2009년 11월 5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0년 6월 27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