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해효는 1985년전두환 군사정권에 반대하는 학생 운동이 한창인 한양대학교에 입학하였으나, 부친이 육군 대령으로 퇴역하여 4남매의[2] 학비를 감당할 형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장학금을 타기 위해 학업에만 열중해야 하였다.
졸업 후 1990년 연극〈사천의 착한 여자〉에 출연하면서 연예계에 진출하였고 연극, 텔레비전 드라마, 영화 등에서 배우로서 활동하였으며 1991년 지상파 3사 공채 탤런트 시험에서[3] 낙방하기도 했다. 권해효는 대학생 시절 학생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한 부재 의식이 있어 각종 집회의 사회자 등으로 참여했다.
2011년 9월, 권해효는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사회적 발언을 하게 된 계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7]
평범하게 살았다. 아이를 낳고 나서부터 세상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보통 어느 학원에 보내고, 대학엘 보내는 게 아이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아이들은 수천수만 가지 재능을 가지고 있는데, 누가 책상에 오래 앉아 있나 하는 것을 테스트해서 아이들을 줄 세운다. 그것을 교육이라고 한다. 너희가 살아갈 세상을 아빠로서 고민하고, 변화를 위해 노력했다는 말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세상을 공부도 하다보니 시민사회 영역에 함께 참여하게 됐다. 첫 아이 낳고 출생신고를 하는데, 아내와 내 본적을 적어 제출했더니 틀렸다고 다시 쓰라고 하더라. 결혼했다고 아내의 본적이 남편의 본적으로 바뀌는 것이 맞느냐라는 의문을 가졌다. 내 딸도 커서 이렇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평등가족 홍보대사도 했다. 호주제가 폐지되면서 함께 하니 이렇게 변화하는구나 하는 희망을 보았다.
1990년대 중반부터 양심수를 후원하기 위해 결성된 사회운동단체인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의 〈인권 콘서트〉 행사, 호주제 철폐 운동, 이주 노동자 인권 운동, 청소년 인권 운동 등 진보적 사회 운동에 참여했다.[7]
2008년에 배우 최진실의 사망 후 제기된 친권자동부활 문제에서 희극 배우 김미화 등과 함께 친권자동부활에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8]
2011년에 반값등록금 1인 시위 등에 참가했고 박원순 캠프 멘토에 합류해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를 지지했다.[9] 일본의 재일동포들이 세운 민족학교인 조선학교를 응원하는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 대표로서, 재일동포 차별철폐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12월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1000번째 수요시위가 있었고 시위 사회를 맡았다.[10][11]
2012년 3월, 서울특별시청은 '성평등 위원회'를 출범시켰는데, 권해효는 언론문화 분야 위원으로 위촉되었다.[12]
2011년 12월 30일, 제10회 《미래를 이끌어갈 여성지도자상》(약칭 미지상) 수상자 7명과 특별상 3인이 선정되었고, 미지상은 시민운동, 법조계, 경제계, 문화예술계 등 사회 각계각층에서 미래를 이끌어갈 차세대 여성 리더를 선정해 시상하는 상인데, 미지상 10회를 맞아 양성평등의식이 높고 여성문제에 헌신한 남성 3인도 특별상으로 선정되었고 권해효도 그 3인 중 한 명으로서 특별상을 받았다. 권해효는 2002년부터 한국여성단체연합 홍보대사를 맡아 왔고, 여성단체의 각종 기금 모금 행사에서 무료 공연을 펼치는 등 재능 나눔도 활발히 벌였으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15]
기타
사회운동가로서의 활동
2011년 9월, 권해효는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사회적 발언을 하게 된 계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평범하게 살았다. 아이를 낳고 나서부터 세상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보통 어느 학원에 보내고, 대학엘 보내는 게 아이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아이들은 수천수만 가지 재능을 가지고 있는데, 누가 책상에 오래 앉아 있나 하는 것을 테스트해서 아이들을 줄 세운다. 그것을 교육이라고 한다. 너희가 살아갈 세상을 아빠로서 고민하고, 변화를 위해 노력했다는 말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세상을 공부도 하다보니 시민사회 영역에 함께 참여하게 됐다. 첫 아이 낳고 출생신고를 하는데, 아내와 내 본적을 적어 제출했더니 틀렸다고 다시 쓰라고 하더라. 결혼했다고 아내의 본적이 남편의 본적으로 바뀌는 것이 맞느냐라는 의문을 가졌다. 내 딸도 커서 이렇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평등가족 홍보대사도 했다. 호주제가 폐지되면서 함께 하니 이렇게 변화하는구나 하는 희망을 보았다.
1990년대 중반부터 양심수를 후원하기 위해 결성된 사회운동단체인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의 〈인권 콘서트〉 행사, 호주제 철폐 운동, 이주 노동자 인권 운동, 청소년 인권 운동 등 진보적 사회 운동에 참여했다.
2008년에 배우 최진실의 사망 후 제기된 친권자동부활 문제에서 희극 배우 김미화 등과 함께 친권자동부활에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2011년에 반값등록금 1인 시위 등에 참가했고 박원순 캠프 멘토에 합류해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를 지지했다. 일본의 재일동포들이 세운 민족학교인 조선학교를 응원하는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 대표로서, 재일동포 차별철폐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12월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1000번째 수요시위가 있었고 시위 사회를 맡았다.
2012년 3월, 서울특별시청은 '성평등 위원회'를 출범시켰는데, 권해효는 언론문화 분야 위원으로 위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