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대학교 체육학과 졸업 후 지명을 받지 못하고 2003년에 신고선수로 두산 베어스에 입단했다. 그 해 강한 어깨와 매끄러운 수비를 인정받아 그 해 7월 1일 1군으로 정식 승격된 후 같은 날 삼성 라이온즈전부터 출전했고 59경기에 출전해 2할대 타율을 기록했다.[2] 이어 팀의 주전 유격수였던 김민호가 그 해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 후 2004년부터 주전으로 자리잡아 그 해 122경기에 출전했다.
2005년에는 골든 글러브 유격수 부문 투표에서 326표 중 260표를 받아 장종훈, 박경완에 이어 신고선수 출신으로는 3번째 골든 글러브 수상자가 됐다.[2]
개막 후 10경기 48타석 연속 무안타를 기록하며 유지훤의 47타석 연속 무안타 기록을 경신했다. 4월 11일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채병용을 상대로 10경기만에 안타를 기록했다.[10]5월 31일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역대 87번째 통산 1100경기 출장을 기록했다.[11] 전반기에 타격 부진에 시달리며 79경기에서 49안타, 타율 0.201, 6홈런, 22득점, 12타점, 16볼넷, 37삼진을 기록했다.
8월 21일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윤성환을 상대로 데뷔 첫 연타석 홈런을 기록했다.[12] 후반기 61경기에서 59안타, 타율 0.301, 7홈런, 155득점, 66타점, 20볼넷, 29삼진을 기록했고, 홈런 부문에서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다.
5경기에서 타율 0.444, 8안타, 3타점을 기록해 타자 중 가장 뛰어난 타격을 보였다. 또한 3차전에서 박민우가 결정적인 실책을 하자 "결정적인 끝내기 실책 나 역시 했었다. 하지만 다음 플레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조언을 하며 내야 수비에도 기여했다.[13]
4월 13일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역대 73번째 통산 1200경기 출장을 기록했다.[14]5월 1일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레일리를 상대로 역대 76번째 통산 네 자릿수 안타를 기록했다. 그는 경기 후 "신인 시절 때부터 지켜봐 주시고 기회를 주신 감독님과 코칭스태프, 동료선수들에 진심으로 감사하다"며 1000안타 달성 소감을 밝혔다.[15]8월 5일한화 이글스와의 경기 카스티요의 150km/h 직구에 오른쪽 옆구리를 맞았고, 정밀 검사 결과 후방 갈비뼈가 골절됐다.[16]
당시 두산 베어스투수였던 리오스가 최고의 유격수로 여겼던 그가 군 병역 문제가 걸려 있는 도하 아시안 게임 대표로 선발되지 못하자 기자들에게 했던 말이다. 그 후 대표팀 차출 문제에 대해 불만을 가졌던 그의 팬들이 'Why not 손시현'이라는 오자가 있는 현수막을 제작해 화제가 됐다. 그리고 프로 야구 중계에서 'why? not 손시헌'이라는 명칭을 얻었다. 당시 감독이었던 김재박은 그를 엔트리에 넣지 않았고, 그 때 외야수 추신수도 엔트리에 넣지 않아 크게 논란이 일었다. 결국 2007년에 상무 야구단에 입대했고, 아시안 게임에서 야구 대표팀에게 도하의 참극이 일어나고 말았다. 제대 후 기량이 더 발전해 광저우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팀 유격수로 선발되며 금메달 획득에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