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1990년대 중반, 프로야구의 방위병 제도가 폐지되자, 야구를 하면서 병역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상무 외에는 사실상 사라졌다. 이 때부터 아마추어로만 구성되던 국가대표팀은 프로로 전환되어 선발되었다.
1998년 아시안 게임에서는 박찬호, 김병현, 서재응과 같은 메이저리거와 다수의 프로 선수들이 참여하여 당시 아마추어 선수들만 참여하던 아시안 게임에서 손쉽게 우승을 차지했다. 2000년 하계 올림픽에서는 동메달 결정전 구대성의 완투승으로 동메달을 차지하여 올림픽 야구 사상 첫 메달을 차지하였고, 2002년 아시안 게임에서는 대회 2연패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김재박이 이끌던 2004년 하계 올림픽에서는 예선에서 탈락해 본선 진출에 실패하였고, 곧이어 병역 비리가 터지면서 대한민국 야구는 침체기를 맞게 된다.
그러던 2006년, 제1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이 개최되고 박찬호, 김선우, 봉중근, 구대성, 김병현, 최희섭, 서재응을 비롯한 다수의 해외파가 참가한 가운데, 숙적의 라이벌 일본에게 2연승을 거두는 등 4강까지 올라갔지만, 준결승전에서 패배하여 4강에 머물고 말았다. 수많은 메이저리거가 소속된 국가를 이기고 4강까지 올라가자, 대한민국 정부는 2002년 FIFA 월드컵에서 4강에 진출하자 병역 특례를 준 것처럼 병역 혜택을 주면서 모두 11명이 병역 특례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조별 리그 B조에서 대한민국이 2승 1패로 같은 중화 타이베이와 네덜란드하고 승점이 같아졌고, 승자승(HTH)까지도 같아졌지만 득실차(TQB)에서 밀려 조 3위로 아쉽게 2라운드 진출에 실패했다.
2009 WBC 대회 직전의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은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금메달의 성과에 기대가 한껏 부풀어 있었다. 아쉽게 단 한경기를 지고서도 4강에 머무른 2006 1회 WBC의 아쉬움과 함께 군 미필 상태인 젊은 선수들(최정, 박기혁 등)은 군 면제도 기대한 데다가 온 국민이 열광하는 스포츠가 된 야구, 특히 한일전에 시선이 쏠렸다. 하지만 KBO는 WBC 대표팀 감독 선임을 두고 고민에 빠졌다. 감독 1순위는 작년 KBO 리그 준우승 팀(두산 베어스)의 감독이자 올림픽 전승 우승의 장본인인 김경문 감독이었는데, 김경문 감독이 베이징 올림픽 당시에도 장기간 팀을 비웠다는 이유로 고사했다. 또한 1순위였던 작년 프로 야구 우승 팀(SK 와이번스)의 감독인 김성근 감독은 구단 SK 와이번스의 WBC 감독 차출 승인을 하였지만 WBC 감독 선임일이던 2008년11월 5일 당시 인터뷰에서 ’내 성격 알지 않느냐, 일단 맡으면 끝장을 봐야 하는데, 그러다가 내가 쓰러지면 에스케이는 어떻게 되느냐’는 이해할 수 없는 건강 문제로 거절하였다. 그렇게 되자 여론은 자연히 1회 WBC 감독인 김인식 감독으로 쏠렸고, 뇌경색 수술을 받고 다리가 불편한 상태에서 WBC 대표팀을 맡게 된다. 그 후유증으로 김인식 감독이 이끌던 한화 이글스는 2009년 프로야구 최하위인 8위에 그치고, 김인식 감독은 재계약에 실패하고 구단 고문직에 앉게 된다. 여론이 고사했던 김성근 SK 감독에게 비판적으로 쏠렸으나 침묵으로 일관하였고 1년 후 2009 한국시리즈 이후 박동희 기자와의 인터뷰에 응하였으나 여론의 물매를 받게 되었다.[3][4]
2009년 WBC 선수단의 포상금 문제
추신수, 이대호, 이용규, 이진영, 손민한, 김현수 등 2009년 제2회 WBC 대회에 참가한 28명의 국가대표 선수들이 KBO를 상대로 포상금 문제로 소송을 제기했다. KBO는 선수들에게 상금 100만 달러에 한해서 포상금으로 지급한다는 방침이며 선수 1인당 돌아가는 금액은 3200만 원이다. 하지만 선수들은 준우승 상금 등으로 받은 300만 달러에서 경비와 세금을 제외하고 선수 1인당 9200여만 원씩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5][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