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러드 조지프 암스트롱
제러드 조지프 암스트롱(영어: Gerard Joseph Armstrong, 1954년 5월 23일, 벨파스트 ~)은 전 북아일랜드 국가대표 축구 선수로, 현역 시절 스트라이커로 활약했다. 그는 현역 시절 대부분을 잉글랜드에서 보냈으며, 스페인에서도 활약했다. 그는 북아일랜드 국가대표팀 일원으로 1982년 월드컵에 참가해 큰 화제를 불러모았는데, 영연방 국가들을 통틀어 이 대회에서 가장 많은 득점을 기록했다. 이 중 1골은 개최국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1-0 깜짝 결승골이 되었다. 그는 현재 축구 분석가로 활동하고 있다. 클럽 경력암스트롱은 유년 시절 잉글랜드의 리즈 유나이티드를 지지했고,[5] 북아일랜드의 세인트 폴스 스위프츠에서 신고식을 치렀다.[6] 그는 청소년기에 게일릭 풋볼을 하다가 징계를 받고서 축구 선수로 전향했는데, 뒤늦게 시작한 것은 그자신에게 큰 걸림돌이었다고 생각했다.[7] 1975년 11월, 암스트롱은 잉글랜드로 건너가 £25,000에 토트넘 홋스퍼에 입단했다.[6] 1976년 8월 21일, 22세의 암스트롱은 1-3으로 패한 입스위치 타운전에서 토트넘 첫 경기를 치렀다.[8] 그는 싸움닭 군단 소속으로 84번의 리그 경기에 출전해 10골을 기록했다.[8] 1980년 11월, 그는 2부 리그의 왓퍼드로 £250,000에 이적했다.[6] 왓퍼드는 1981-82 시즌에 1부 리그로 승격되었고, 암스트롱은 구단의 1부 리그 1호골의 주인공이 되었다.[6] 저는 꼼짝 못했습니다, 특히 발렌시아 원정에서요, 그 곳 지지자들이 작년에 제가 했던 일을 너무나도 잘 기억했지만, 우리는 발렌시아에서 2-2로 비겼고, 북아일랜드 국가대표로서 흔들었던 같은 골망을 흔들었지요. – 제리 암스트롱, 1982년 월드컵 이후 마요르카 시절을 회상하며 BBC 스포츠 북아일랜드, 2005년 1월 16일.[9]
1983년 8월, 그는 스페인으로 진출했는데, £200,000에 마요르카로 이적했다.[6] 1982년 월드컵에서 스페인을 상대로 득점한 일로 인해, 그는 원정 경기에서 상대 지지자들의 해코지 대상이 되었다. 암스트롱은 1985년 8월에 웨스트 브로미치 앨비언으로 자유 이적하면서 잉글랜드 무대에 복귀했다.[6] 1986년 1월, 그는 체스터필드로 임대되어 1986년 3월에 시즌 말까지 완전 이적했다. 그는 첫 경기에서 첨탑 군단의 첫 골을 넣었지만, 브렌트퍼드와의 안방 경기에서 1-3으로 패했다.[6] 그는 1986년 8월에 자유 이적으로 브라이턴 & 호브 앨비언으로 이적했다.[6] 1987년, 그는 밀월로 임대되었다.[6] 1988년에 암스트롱은 브라이턴의 선수 겸 감독도 맡았지만, 지지자들과의 다툼으로 구단을 떠났다.[6][10] 1989년 2월, 그는 크롤리 타운에서 같은 보직을 맡다가 1990년 3월에 또다시 지지자들과 충돌하고 퇴단했다.[6] 같은 달, 그는 글리버넌으로 이적했고, 1990년 4월까지 브롬리에서 주중 경기를 출전했다.[6] 암스트롱은 브라이턴 연고의 비리그 소속 구단 화이트호크 소속으로 1997-98 시즌을 보내고 은퇴했다. 그의 화이트호크 첫 골은 그의 첫 경기인 1997년 12월 9일, 1-3으로 패한 버지스 힐 타운과의 서섹스 군 리그컵에서 기록했다.[11] 그는 같은 시즌 화이트호크 소속으로 리그에서 2골 더 득점했다.[12][13] 국가대표팀 경력1977년 4월, 암스트롱은 북아일랜드 국가대표팀 첫 경기를 치렀다. 그는 0-5로 패한 서독과의 경기에서 조지 베스트와 나란히 출전했다. 5년 후, 암스트롱은 스페인에서 열린 1982년 월드컵에서 북아일랜드 국가대표팀 일원으로 참가했다. 유고슬라비아와의 1차전을 0-0으로 비긴 후, 이어지는 온두라스와의 2차전에서 선제골을 넣어 경기를 1-1로 마쳤다. 2차 조별 리그 진출을 위해 1승이 필요했던 북아일랜드는 발렌시아에서 열린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47분에 암스트롱의 선제골로 앞서나갔다. 북아일랜드는 맬 도너기의 퇴장으로 수적 열세에 몰렸지만, 1-0으로 승리했다. 그러나, 북아일랜드는 2차 조별 리그에서 오스트리아와 2-2로 비긴 후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암스트롱의 골에도 불구하고 1-4로 패했다. 암스트롱은 북아일랜드를 대표로 6번의 월드컵 경기에 출전했다.[14] 국가대표팀 득점 목록아래의 점수에서 왼쪽의 점수가 북아일랜드의 점수이다.
감독 경력1991년 11월, 암스트롱은 비리그 구단 워딩의 감독이 되었고,[6] 1993년에 승격을 이룩했다. 1994년, 그는 북아일랜드 국가대표팀의 수석코치로서 전 국가대표팀 동료이기도 했던 브라이언 해밀턴 감독을 보좌했다.[6] 1995년, 그는 워딩을 떠나 1996년 3월 서리 주 축구 협회 유소년 감독을 역임했다.[6] 2004년, 그는 북아일랜드 국가대표팀 수석 코치로 복귀해 로리 산체스 감독을 보좌하게 되었다. 그는 2006년 8월에 다른 일을 하기 위해 보직을 내려놓았는데, 그의 배우자 데비가 출생할 예정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15] 매체 활동암스트롱은 감독일을 겸해 텔레비전, 라디오, 그리고 신문 매체의 축구 언론인 활동을 병행했다. 그는 스카이 스포츠의 라 리가 공동 해설가이며, ESPN 스타 스포츠의 프리미어리그 분석가로도 활동한다.[16] 그는 토크스포츠 라디오 방송에서 가브리엘레 마르코티와 함께 월요일에 유럽 축구 쇼를 진행했지만, 이후 암스트롱은 토크스포츠를 떠났다. 그는 직설적인 평론가로 현대 축구에 만연한 다이빙을 비난했다.[17] 암스트롱은 2014년 월드컵 당시 더 스트레이츠 타임스에도 나온 싱가포르 매체인 싱텔 미오 텔레비전의 분석가로도 활동했다.[18] 2023년에 들어서, 그는 아일랜드의 버진 미디어 텔레비전에서 공동 해설가로 활동중이다. 사생활암스트롱은 배우자와 슬하에 두 자식을 둔, 벨파스트 폴스 로드 출신의 인물이다. 그는 북아일랜드 분쟁 당시 북아일랜드에서 11남매와 유년 시절을 보냈다.[19][20][21][22] 수상
각주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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