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코다테시(일본어: 函館市 하코다테시[*], 문화어: 하꼬다떼시)는 일본홋카이도 남부에 있는 시이다. 홋카이도에서는 삿포로시, 아사히카와시에 이어 3번째로 인구가 많으며, 중핵시로 지정되어 있다. 홋카이도 내에서 비교적 온난한 기후로 인해 교통의 요충지로 발전했고, 홋카이도 남부의 행정·경제·문화 중심지로 기능하고 있다. 어업과 관광을 겸하고 있다.
명칭
과거 이곳은 우스케시(宇須岸)로 불렸다. 1454년 난부씨와의 싸움에서 패한 쓰가루의 호족인 안도 마사스에 및 다케다 노부히로 등과 함께 에조치로 건너 온 고노 마사미치가 하코다테산 기슭(현재의 야요이정 부근)에 쌓은 관(‘우스케시관’ 또는 ‘고노관’으로 불린다)이 상자를 닮았기 때문에 하코다테(箱館)로 불리게 되었고, 메이지 시대에 하코다테(函館)로 고쳤다고 하지만 여러 설이 있다.
지리
하코다테 시가지하코다테의 야경
지리
홋카이도 오시마반도 남부, 가메다반도에 위치하고 동서쪽과 남쪽은 바다(쓰가루 해협과 하코다테만)와 접한다. 시가지는 옛 화산인 하코다테산과 연결되는 육계도인 하코다테 반도에서 나나에하마 방면·가메다 평야 방면·요코쓰다케 기슭 방면으로 펼쳐져 있다.
깊은 후미가 있는 부채를 편 것 같은 지형 때문에 하코(巴港)로 불리는 천연의 양항으로 번창했다.
에도 시대에 다카다야 가헤에가 하코다테를 거점으로 했다. 에조치 교역의 장으로 번창했고 마쓰마에번의 관청이 놓였다. 에조치가 천령(막부 직할령)이 되면서 막부의 봉행소가 놓였다. 19세기홋카이도가 본격적으로 개척될 무렵 하코다테가 개항되어 바깥 세상에 문호를 개방하였다.
메이지의 개척사 시대에는 출장소와 지청이 설립되었다. 이후 그것들이 폐지되어 홋카이도청이 설립될 때까지 얼마 안되는 기간 동안 하코다테현의 현청 소재지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홋카이도 남부의 중심지로 국가의 주요 파견 기관이나 홋카이도의 파견 기관인 오시마 종합진흥국 등 행정 기관이 여럿 소재하고 있다.
지리적으로 홋카이도에서 혼슈와 가장 가까운 항구도시이기 때문에 메이지 시대부터 해운이 발달했고 홋카이도와 혼슈의 연결망으로 이전에는 세이칸 연락선이, 현재는 정기 페리가 아오모리 사이에 취항하고 있어 물류의 연결점이 되고 있다. 삿포로와의 육상 교통은 철도로는 하코다테 본선이, 도로로는 국도가 있다.
일본의 고도 경제성장기에는 조선업과 그 관련 산업이 많이 번창해 도시가 활기찼지만, 오일 쇼크를 기점으로 침체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북양 어업의 기지로 번창해 어선단의 일제 출어 등도 볼 수 있었지만, 러시아(당시는 소련)의 200해리 경제 수역 설정 이후에는 그 모습이 사라져 버렸다. 버블 경제 붕괴 후에는 예전보다 거리의 빈 집이나 빌딩의 공실, 공터(주차장) 등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이러한 지역 경제 악화에 대응해 기업 유치를 진행하고 있고, 20세기 말부터는 정보계 대학의 설립에 의한 IT 산업 육성이나 ‘국제 수산·해양 도시 구상’에 근거한 시도 등 새로운 지역 발전을 향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1454년 - 고노 마사미치가 우스케시(원래는 아이누어로 '만의 구석'을 의미하는 우쇼로케시)로 불리던 어촌에 관을 세웠다. 이 관이 상자 형태를 닮았다는 점에서 하코다테(箱館)로 불리게 되었다.
1859년 - 미일 수호 통상 조약에 의해 일본 최초의 국제 무역항으로 개항해 외국인 거류지가 설치되었다.
1868년 - 보신 전쟁 후기에 에노모토 다케아키 등이 하코다테를 점령하여 에조 공화국을 선언하고 고료카쿠를 거점으로 했다(하코다테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