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종목은 1931년 11월 2일부터 11월 5일까지 일제강점기 조선경성부에 있는 경성운동장에서 개최되었다.[1][2][3]조선체육회는 대회를 진행하기 위해 1931년 10월 30일까지 참가신청을 받고 10월 31일에 대진을 결정했다.[4] 이 대회에서 대회 사상 처음으로 각 선수에게 등번호를 붙이고 경기를 진행했고, 개막식 행사 때 선수 선서도 진행되었다.[4]
소학부 종목에는 공옥보통학교, 충신학원, 흥동학교 등 3개 선수단이 참가했고, 중학부 종목에는 경성실업전수, 경신학교. 동성상업학교, 배재고등보통학교, 보성고등보통학교, 숭실중학, 송도고등보통학교, 신의주고등보통학교, 오산고등보통학교, 중앙고등보통학교. 진주고등보통학교, 휘문고등보통학교 등 12개 선수단이 참가했으며, 청년부 종목에서는 보성전문학교, 봉래축구단, 비호단, 서울구락부, 숭실전문학교, 신활축구단, 전연희단 등 7개 선수단이 참가했다.[1][4]
소학부 종목에서는 충신학원이 흥동학교를 상대로 6:1로 이기며 우승을 차지했고, 중학부 종목에서는 결승에서 숭실중학이 경신학교를 상대로 1:0으로 이기며 우승을 차지했다.[1] 청년부 종목에서는 결승에서 숭실전문학교가 전연희단을 상대로 3:1로 이기며 우승을 달성했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