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종목은 1932년 11월 2일부터 11월 5일까지 일제강점기 조선경성부에 있는 경성운동장에서 개최되었다.[1] 1932년 10월 29일까지 참가 신청을 받아 1932년 10월 30일에 대진 추첨이 진행되었다.[3] 청년부 종목과 전문부 종목의 팀당 참가비는 5원이고 중학부 종목은 3원이었으며, 소학부 종목과 조선체육대회 단체 회원은 참가비가 면제되었다.[3] 한 팀 당 선수 16명과 지도자 1명으로 구성되었다.[3]
소학부 종목에서는 계성학교, 대동학교, 보인보통학교, 승동학교, 조양학교, 충신학원 등 6개 선수단이 참가했고, 중학부 종목에서는 경성농업, 경신학교, 배재고등보통학교, 보성고등보통학교, 숭인상업, 실업전수학교, 중동학교, 중앙고등보통학교, 진주고등보통학교, 청년학관, 휘문고등보통학교 등 12개 선수단이 참가했다.[1] 전문부 종목에서는 보성전문학교와 연희전문학교가 참가했으며, 청년부 종목에서는 계림 축구단, 봉래 축구단, 청진 축구단이 참가했다.[1] 그리고 20여 년 전 선수로 활약했던 은퇴 선수와 30세 이상 노장 선수 등이 참가하는 노동부 종목이 열렸다.[4] 노동홍백전이라는 명칭으로 진행된 이 경기는 당시에 번외 경기로 진행되었지만, 오늘날 대한체육회에서는 전국체육대회의 일부로 분류하고 있다.
소학부 종목은 전·후반 각 25분씩 50분 경기로 진행되었고,[5] 중학부 종목은 전·후반 각 30분씩 60분 경기로 진행되었다.[4] 청년부 종목은 전·후반 각 35분씩 70분 경기로 진행되었다.[6]
소학부 종목에서 대동학교와 충신학원에 결승에 진출했는데, 양팀 모두 제한 연령을 초과한 선수가 포함되어 있는 사실이 드러나 기권하여 결승전이 진행되지 않아 우승팀이 없다.[1][7] 중학부 종목에서는 경성농업이 결승에서 배재고등보통학교를 상대로 3:2로 이기며 우승을 차지했다.[1] 전문부 종목에서는 보성전문학교가 연희전문학교를 상대로 2:0으로 이기며 우승을 차지했다.[1]리그전 방식으로 진행된 청년부 종목에서는 청진 축구단이 우승했다.[1]